“직장맘은 숟가락도 못 얹어” 엄마 네트워크서 왕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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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안모(40·서울 강남구 일원동)씨는 지난해 8월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외톨이라는 걸 알게 됐다. 맞벌이하느라 낮 시간에 집을 비운 사이 아들 친구들이 놀러와 컴퓨터 오락 게임을 몇 번 한 게 화근이었다. 친구 부모들이 “○○네 집에 놀러가지 말라”고 한 것이다. 안씨는 “또래 부모들과의 교류가 끊긴 데다 아이까지 따돌림당하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안씨는 결국 지난해 말 10년째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직장맘들은 출산 이후 보육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자녀교육 문제에 부딪혀 일을 접는 경우가 많다. 한창 전문성을 발휘해야 할 고급 인력들이 자녀의 교육 장벽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고2 학부모 남모(43)씨는 2008년 큰아들이 중 3때 학생회장에 출마하면서 유치원 원장 자리를 그만뒀다. 아이의 유치원, 초등학생 시절을 잘 버티며 직장생활을 꿋꿋이 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밤을 꼬박 새우며 “아이한테 평생 원망 듣지 않을까” 하는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는 “아이가 회장을 맡으면 엄마가 학교 행사에 많이 가야 하는데 나 때문에 출마하지 마라고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직장맘들은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가사를 도맡아 하면서도 ‘0점 엄마’라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정찬호 마음누리 신경정신과 원장은 “서울 대치동 엄마들 사이에선 ‘직장맘은 숟가락만 얹는 사람’이어서 모임에 끼워주지 말자는 협약이 있을 정도”라며 “직장맘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과 상담을 받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9월 직장맘 193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도 직장맘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엄마 네트워크에서 소외’(44.4%)였다. 엄마들 모임에 끼지 못하고 겉도는 걸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예지은 수석연구원은 “직장맘들은 전업주부들로부터 소외된 결과 자녀도 피해를 보지 않을까 가장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직장맘들은 자녀의 학교생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한다. 서울 H고 1학년 15개 학급 중 12개 학급의 학급 회장(반장) 어머니는 모두 전업주부다. 박하식 경기외고 교장은 “학부모 모임을 저녁으로 조정하는 등 최대한 직장맘의 불편을 덜어주려 하지만 자녀의 학교 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취재팀은 서울 D중 3학년 한 학급 학생 34명(직장맘 12명)의 ‘엄마 네트워크’를 조사했다. 월 2회 이상 정기적으로 만나는 학부모 그룹을 파악한 것이다. 전업주부인 학급 회장 어머니를 중심으로 8명이 상대적으로 자주 만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맘은 없었다. 이들은 학원 정보, 체험활동 정보를 나누는 등 결속력이 강했다.

 국제기구 한국위원회에 근무하는 기모(45·경기도 일산)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는 “학부모 모임이 낮 시간대에 주로 열리는 탓에 참석을 못 해 학교 관련 정보에 어둡다”며 “수시로 바뀌는 교육정책을 따라잡기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전업주부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직장맘들은 아이 교육에 부족한 부분을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그 효과는 신통치 않다. 서울 강남의 J학원장은 “전업주부들은 살림살이가 팍팍해 사교육을 많이 못 시키는 걸 괴로워하고, 직장맘들은 돈으로만 해결하려다 좌절을 겪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교육팀=강홍준·박수련·박유미·김민상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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