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머리 위에서 노는 카드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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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른 카드로 갈아타야겠네.” “손님 끌기용으로 몇 달 서비스하다 은근슬쩍 없애면 그만인가.”

 최근 한 인터넷 재테크 사이트에 기업은행 ‘마일스토리카드’ 이용자들의 불평 글이 이어졌다. 지난해 1월 말 출시된 이 카드는 파격적인 캐시백 서비스로 인기를 끌어 8만2000여 명이 발급 받았다. 한 달 20만원 이상 이용하면 1만원 이상 결제할 때마다 1000원씩, 한 달 최대 1만원을 돌려주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5월부터는 월 30만원 이상 써야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은근슬쩍 조건을 까다롭게 바꾼 것이다.

 ‘신용카드의 배신’이 줄을 잇고 있다. 주요 카드사가 올 들어 7월까지 없애거나 축소한다고 밝힌 부가서비스만 20개에 달한다. 영화·호텔·항공권 등 쏠쏠한 할인 서비스가 하나 둘씩 사라질 예정이다. 할인 받는 기준을 까다롭게 만들거나, 횟수를 줄이기도 한다.

 이미 지난 1일부터 현대카드는 김포공항 발레파킹 서비스를 없앴고, 우리은행은 11번가 포인트 적립비율을 낮췄다. 삼성카드는 골프장 무료부킹 서비스를 3월 중 폐지한다. 신한카드와 국민은행은 항공권 할인 서비스를 없앨 예정이다. 하나SK카드는 7월부터 제한 없이 제공되던 커피빈 할인을 월 4회로 제한하고 놀이공원 할인도 연 4회로 줄인다.

 카드사들은 고객들에게 바뀐 내용을 알리고는 있다. 그러나 홈페이지 ‘공지사항’ 란에 올리거나, e-메일 대금고지서 뒤쪽에 안내하는 식이어서 고객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국대 경영대학원 이보우(신용카드학) 교수는 “카드사가 미리 통지만 하면 부가서비스를 변경할 수 있는 데다 통지 규정도 엄격하지 않다”며 “규정상으론 카드사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2009년 금융감독원은 카드사들의 이런 버릇을 고치겠다며 감독규정을 바꿨다. 이에 따르면 카드를 새로 출시한 지 1년 안엔 부가서비스를 줄일 수 없고, 변경 내용을 6개월 전에 미리 알려야 한다. 하지만 이런 규정은 오히려 출시 뒤 1년만 유지하면 그만인 걸로 악용되기 일쑤다. 실제 마일스토리카드는 출시 1년이 되는 오는 25일 마트·렌터카·숙박 등 각종 할인 혜택을 없앤다. 6개월 전 고지 규정은 아예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씨티은행은 일부 호텔의 발레파킹 서비스를 올 1월 1일부터 없앤다는 공지를 지난해 11월 말에야 띄웠다. 이에 대해 익명을 원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할인 혜택을 분담하던 제휴사가 갑자기 ‘수지가 안 맞아 서비스를 그만두겠다’고 버티면 카드사로선 이를 강제로 붙잡을 수 없는 노릇”이라고 해명했다.

 서울YMCA 신용사회운동사무국 서영경 팀장은 “카드 유효기간 동안 부가서비스 혜택이 유지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부가서비스를 유지하지도 못하면서 새로운 상품 출시에 급급한 카드사 마케팅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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