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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에서 좌’는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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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지난해 6·2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한 진보·좌파 인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유명인이다. 대한민국 사람치고 조선시대 양반 가문의 후예가 아니라는 이가 없는 세상이긴 하지만, 그의 집안이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뼈대 있는 가문이었다. 문중에서 힘껏 밀어주기만 하면 적지 않은 표가 보장될 터였다. 당선에 목말랐던 이 인사가 ‘진성(眞性) 좌파’의 신념을 살짝 접고 문중 어른들께 도움을 청했다. 종친회 간부 모임에 가서 호소도 했다. “잘 알았으니 좀 기다려 보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얼마 후 종친회 어른들의 호출을 받았다. 기대를 품고 갔더니 “우리가 심사숙고한 끝에 당신을 도와주기로 했다”는 반가운 대답이 들려왔다. 그런데 다음에 나온 말이 문제였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당신의 당은 안 된다. 어서 한나라당에 입당해라. 그러면 진짜 힘껏 밀어주겠다.” 평생의 신념을 포기하라는 말에 그는 실소를 머금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연말 개각 때 김영호(52) 전 성신여대 교수가 청와대 통일비서관에 임명되는 것을 보고 이 인사의 웃지 못할 경험담이 떠올랐다. 김영호 비서관은 1980년대 운동권 서적, 그러니까 ‘사회과학’ 책 출판으로 유명했던 ‘도서출판 녹두’의 대표였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도 다녀왔다. 그런 이가 공부를 더 해 교수가 되고 뉴라이트 운동에 참여하더니 우파 정권으로 불리는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비서관이 된 것이다. 비슷한 기억이 더 있다. 지난해 초 청와대에 연설기록 비서관으로 입성한 김영수 전 영남대 교수도 유명한 운동권이었다. 그가 성균관대 재학 중 작성한 ‘아방타방(我方他方)’은 80년대 초 운동권 대학생 사이에 널리 읽힌 ‘빰(팸플릿·문건)’이었다.

 하긴, 짚어보자면 한두 명이 아니다. 이재오 특임장관,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 여권에 투신한, 그러니까 좌(左)에서 우(右)로 변신한 인사들은 일일이 꼽기 힘들 정도다. 이들이 과거 반정부·반체제 운동 시절의 경험과 고민, 열정을 살려 ‘우익 보강’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전투력’도 강하다. 나의 소박한 의문은 여기서 나온다. 그렇다면 왜 ‘우에서 좌’는 없는 것일까. 우파에도 한다 하는 재사(才士)들이 즐비할 텐데, 좌파 진영에 뛰어드는 변신을 감행하는 이는 왜 기억에 없는 걸까.

 좌·우, 진보·보수의 개념 정리부터 해야겠지만 얘기만 복잡해지니 그만두자. 적어도 내가 보기에 ‘체중을 실어’ 좌파로 변신한 우파는 없었다. 왜 그런지 40년 이상 운동권이었고 지금도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이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선뜻 “생활 때문”이라고 말했다. 좌파가 우파에 가는 것도, 우파가 좌파에 못 가는 것도 대부분 경제사정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외가 있다고 했다. 자신이 변호사·교수이거나 부인이 교사·약사·의사라면 나이 들어서도 활동가로 남아있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천 명 중 한 명꼴일 것”이라 했다.

 좌파는 이상주의, 우파는 현실주의라는 근본적인 가치관 차이를 지적하는 이도 있었다. “20대에 좌파 아닌 사람은 심장이 없는 사람이고, 40살 넘어서도 좌파인 사람은 뇌가 없는 사람”이라는 경구를 상기시켰다. 또 다른 이들은 좌파 시절의 열정과 희생심을 들었다. 좌파 출신이 젊을 때 갈고닦은 ‘사회과학’과 정치감각, 개혁의지, 이타심을 되살려 우파에 ‘영양보충’을 해주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좌파의 장점으로 거론된 것들은 모두 우리나라 우파의 약점에 해당한다. 가장 큰 약점은 역시 철학의 빈곤 아닐까 싶다. 가치관보다 이익을 앞세우는 체질 때문이다. 그래서 여권 대선 주자들 앞에 벌써부터 길게 줄 선 지식인들을 보는 마음도 왠지 편치 않다. 요즘 한반도선진화재단 같은 곳에서 우파 나름의 철학을 찬찬히 다듬고 있다지만 아직 멀었다. 우파, 더 반성하고 노력해야 한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