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일 24개국 여행 … 내가 나에게 준 합격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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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 입소를 미루고 세계일주 여행을 떠난 우은정씨가 페루의 티티카카 호수 티로스 섬에서 현지 어린이에게 즉석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연합뉴스]

“아프리카에서 굶주리는 아이들을 본 뒤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법률가가 되겠다는 꿈을 굳히게 됐습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연수원 입소를 두 차례 미뤄가며 세계 여행을 다녀온 우은정(26·여)씨. 오는 3월 42기 사법연수생이 되는 우씨는 “여행을 통해 세상에 대한 나의 선입견과 편견이 깨졌고, 넓은 세상 앞에 겸손한 법조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319일 동안 아프리카·중동·유럽·남미 지역 24개 나라를 여행했다.

 우씨가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은 2008년 이화여대 법학과 3학년 때였다. 하지만 오랜 소망인 세계여행을 하기 위해 연수원 입소를 하지 않았다. 2009년엔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뛰어다녔다. 우씨는 1년 동안 학원 보조강사, 바텐더 등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다. 그리고 이곳 저곳에 손을 내밀어 빌린 돈을 합쳐 경비 3000만원을 모아 지난해 1월 여행길에 올랐다.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생활하던 시절 방 안에 세계지도를 붙여놓고 ‘시험만 통과하면 나에게 세계일주라는 선물을 줄 거야’라고 했던 다짐이 현실로 옮겨진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첫 발을 들인 뒤 케냐·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지역 나라를 거쳐 중동 국가와 유럽 곳곳을 들렀다. 이어 남미 대륙으로 건너가 콜롬비아·쿠바·브라질·아르헨티나 등을 둘러본 뒤 지난해 12월10일 서울에 돌아왔다. 키 158㎝의 우씨가 메고 다닌 배낭 무게는 출발할 때 20㎏이던 것이 귀국 땐 35㎏이 됐다. 마음이 여려 “밥 사달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굶던 17살 에티오피아 소년, 튀니지에서 현지인을 따라가 사흘 동안 그의 친척집을 돌아다니며 받은 열렬한 환대, 3만~4만원 정도의 생활비로 한 달을 버티는 쿠바 빈민들의 모습 등은 우씨 뇌리에 뚜렷이 남아있다.

 우씨는 “빈곤을 이겨나가는 사람들을 만나며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세계의 굶주린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법조인만의 전문적인 영역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일을 할 때 다양한 시각으로 한 번 더 생각하는 법조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는 “법조인들 사이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상황이지만 연수원 입소에 앞서 여행을 선택한 데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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