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KD램 창조의 현장, 역사 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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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사업장 정문에서 중앙도로를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오른편에 가로·세로 100m 크기의 흰색 울타리 속 공터가 나타난다. 1984년 국내에서 처음 ‘초대규모집적회로(VLSI)’ 64KD램을 생산하던 1라인(사진)이 있던 장소다. 반도체 신화를 창조하던 모태와 같은 건물이 최근 해체되면서 2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고 이병철 회장의 강력한 의지로 삼성은 1라인 건설에 800억원을 투입했다. 1라인 가동 초기 반도체 임직원 107명이 무박2일로 64KD램의 이름에 걸맞게 64㎞를 무박2일 행군한 사실은 지금도 유명한 일화로 전해 내려온다.

 사라진 1라인은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셋째로 독자 개발에 성공한 64KD램을 양산하고, 연간 1200만 달러의 수출 기록을 세웠다. 삼성전자는 1라인의 성공적인 가동을 기반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갔다. 대표적인 사례가 3라인이다. 이병철 회장이 3라인 건설을 처음 지시한 것은 86년 중반이었다. 누적적자가 1300억원이 넘은 상황이라 다시 2800억원이 들어가는 신규 투자를 망설였다.

그러던 87년 8월 6일 삼성반도체통신(현 삼성전자) 기흥 사업장으로 “내일 아침 회장께서 3라인 착공식에 참석한다”는 전화가 걸려왔고, 하룻밤 만에 행사 단상이 마련되고 공장 모형이 제작됐다. 3라인 착공식이 선대 회장의 마지막 공식 행사가 됐다. 3라인은 선대 회장이 세상을 뜬 이후인 88년 10월 완공됐다. 이 무렵 PC 붐과 함께 256KD램 품귀현상이 빚어지면서 삼성반도체는 적자를 메우고 막대한 이익을 냈다.

 현재 1라인 이후 2∼15라인, S라인 등 총 15개 라인이 남아 반도체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또 2016년 말까지 경기도 평택 고덕국제신도시 내 396만㎡ 산업용지에 반도체 생산라인을 조성키로 했다. 기흥 사업장(142만㎡)의 두 배가 넘는 면적이다. 공장부지 조성 사업비만 2조4000억원이 투입된다. 삼성은 아직 1라인의 추후 용도를 결정짓지 못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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