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오는 날, 워싱턴은 붉게 물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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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오바마(左), 후진타오(右)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중국 국가주석이 19일(현지시간) 백악관을 찾아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과 미·중 정상회담을 한다. 후 주석은 2006년 4월 당시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만났다. 하지만 이번 방미에선 미국 의전이 180도 달라진다. 오바마 행정부가 G2(주요 2개국)로 부상한 중국 위상에 걸맞은 세기의 의전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달라진 위상 반영=후 주석의 2006년 방미는 국빈 자격이 아니었다. 따라서 성대한 공식 만찬 없이 부시 대통령은 점심만 대접했다. 부시는 대신 정상회담에 앞선 환영식에서 21발의 예포를 발사하는 성의를 보였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후 주석을 국빈으로 초청했다. 국빈 초청은 취임 후 2년간 인도 총리와 멕시코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다. 예포 발사가 포함된 환영식은 물론 백악관 앞 거리와 워싱턴 기념탑 주변엔 중국의 붉은색 ‘오성홍기’가 가득 나부끼게 된다. 오바마 부부가 주관하는 공식 만찬엔 양국의 주요 경제·문화계 인사가 대거 초청됐다. 백악관 안주인 미셸 오바마는 2009년 11월 인도의 만모한 싱 총리 부부와의 만찬 때 특별한 아이디어를 냈다. 인도 문화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 식기와 식탁보, 냅킨을 모두 인도 국기(國旗)에 들어 있는 녹색으로 통일시켰다. 이번엔 중국을 상징하는 붉은색으로 뒤덮인 만찬장을 기대할 만하다.

 미국의 이런 모습엔 중국의 달라진 위상이 반영돼 있다. 1997년 빌 클린턴(Bill Clinton) 대통령은 장쩌민(江澤民·강택민) 주석을 국빈 초대했다. 하지만 의회는 “천안문 사태를 무력 진압하고 인권을 탄압한 나라 지도자를 최고로 예우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래서 후 주석은 2006년 국빈 방문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미 의회를 포함해 누구도 후 주석의 당당한 워싱턴 방문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미국에 중국은 아쉬운 소리를 할 게 많은 나라다.

 ◆“다시 의전 실수하면 최악”=2006년 후 주석 방문 땐 두 가지의 의전 결례가 있었다. 환영식 사회자는 중국 국가(國歌)를 “대만 국가”로 소개했다. 후 주석 연설 도중엔 한 여성이 “파룬궁 탄압을 중단하라”고 외쳤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그때에 비해 중국의 체급이 커진 데다 양국 관계가 예민해 이런 의전 실수가 생기면 파장이 훨씬 클 것”이라며 “백악관은 중국인이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 만큼 백악관은 후 주석 일행의 경호에도 많은 인력과 경비를 투입할 예정이다.

 미·중 정상의 회담 의제는 2006년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위안화·무역불균형·지적재산권과 북한 문제다. 당시엔 의미 있는 합의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전 세계가 2011년의 국제질서를 좌우할 G2 합의에 주목한다. 미·중 양국이 모두 큰 부담 속에 회담을 준비 중이다.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의 워싱턴 방문(3일)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의 베이징 방문(9일)은 정상회담 성공을 위한 물밑 조율작업의 일환이다. 외교소식통은 “정상회담 일자가 다가오면서 양국 모두 ‘상호 협조가 잘 되고 있다’는 식의 외교적 수사가 자주 나온다”며 “회담 성공에 대한 압박감이 느껴진다”고 전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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