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고 싶은 소망, 토끼해엔 꼭 이루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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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성씨는 4년간 불임클리닉을 다닌 끝에 임신에 성공했다. 신묘년 태어날 아이의 초음파 사진을 보며 기뻐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지난 4년 동안, 아이들이 있는 놀이터엔 근처도 안 갔어요. 배 나온 산모가 왜 그리도 밉던지요. 돌잔치 전화 받은 뒤면 남편 품에서 펑펑 울었죠.”

 최지성(34)씨의 큰 눈이 글썽거렸다. 연상연하 커플인 부부는 5년 전 결혼 후 2년여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당시 친구들에 비해 늦은 결혼이었고, 워낙 아이를 원했던 터라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검사도 받아봤지만 뚜렷한 이상은 없었다. 병원에서 매달 배란일을 받아 부부관계도 지속했지만 소식은 없었다. 온갖 미신, 민간치료의 유혹도 계속됐다. 몸과 마음이 지쳐가던 즈음, 인공수정과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아도 좋다는 진단서를 받았다. 두 차례의 인공수정(남편의 정자를 채취해 부인의 자궁 속에 넣어주는 시술)은 실패했다. 이후 시도한 첫 번째 시험관 시술(채취한 정자·난자를 체외에서 수정시킨 뒤 자궁에 이식)에 아기가 들어섰다. 그러나 3개월 뒤, 태아가 저절로 심장이 멈췄다. 죽은 아이를 분리해내는 링거를 1시간여 맞으면서 최씨는 한없이 자신을 원망했다. 7개월 전 두 번째 시험관 시술에 도전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올 4월이면 꿈에도 그리던 토끼띠 아기가 태어난다. 최씨는 “터널이 길수록 빛이 밝다고 했던가요. 아이를 얻은 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에요. 기다려본 사람만이 이 기쁨을 알 테죠”라고 말했다.

부부 20% 불임 … 이혼·자살 생각도

우리나라 불임 부부는 동굴에 갇혀 산다. 불임에 관한 이야기를 ‘대놓고’ 할 수 없어서다. 섣불리 불임 얘기를 꺼냈다간 ‘비정상 사람’ 취급 받기 일쑤다. 최씨도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던 4년 전부터 친구나 친척 모임조차 나가지 않았다.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박문일 교수는 “실제 불임 진단을 받은 이후에는 정서적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며 “최근 일본 홋카이도대 연구 결과 불임 환자의 6.1%가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고, 12.8%는 이혼까지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현재 불임 부부들이 가장 많이 가입된 한 포털사이트의 ‘불임은 없다. 아가야 어서 오렴’ 카페에는 하루 80~100개의 글이 올라온다. 3만2000명의 회원이 하루 일어났던 속상했던 일을 글로 써서 올리고, 격려의 리플을 달아준다. 한 게시글당 평균 리플 수는 30~40개다.

 관동대 제일병원 산부인과 송인옥 교수는 “정작 주변에서 불임클리닉에 다니는 부부는 많지 않아 보인다. 말을 안 해서다. 실제 엄청난 수의 부부가 주위 사람 ‘몰래’ 불임 치료를 받으러 다닌다”고 말했다.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09년 한 해 불임으로 진료 받은 환자 수는 19만 명이었다. 매년 탄생하는 부부의 수가 31만 쌍 정도인 것에 비해 꽤 많은 숫자다. 송 교수는 “최근 통계에 따르면 부부 10쌍 중 2쌍꼴로 불임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불임 환자는 매년 10~20%씩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환경오염·식품첨가물·스트레스 원인인 듯

전문가들은 불임의 증가를 환경오염·화학첨가물이 든 식사·스트레스 등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1년 영국 연구팀의 추적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40년 세계 남성의 평균 정자 수는 1mL당 1억1000만 개였다. 1990년에는 반으로 줄어 평균 6000만 개였다. 2000년 영국 런던 남성만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또 절반으로 줄어 평균 3000만 개였다. 박 교수는 “각종 오염물질과 스트레스로 인한 호르몬 감소가 실제로 정자 생성 저하라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최근 늘어나는 여성의 생리불순, 자궁내막증, 배란장애 등도 환경오염, 스트레스, 잘못된 식이와 관련 깊다. 이들 질환은 불임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암 치료중이거나 무정자증도 임신 가능

하지만 불임의 원인을 찾고, 해결하는 수술법도 그만큼 진화하고 있다. 박 교수는 “예전에는 난자를 만들어내는 난관이 막혀 있으면 배를 가르는 큰 수술을 해야 했다. 최근에는 복강경으로 막혀 있던 부분을 간단하게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난자 채취도 예전처럼 배에 큰 구멍을 뚫는 것이 아니라 바늘로 살짝 찔러 간단하게 뽑아낸다. 심지어 암 등으로 난소조직을 떼어낸 여성도 임신할 수 있게 됐다. 2004년 벨기에 브뤼셀 루뱅대학 연구팀은 암치료 예정이었던 여성의 난소를 떼어 보관했다가 치료 후 이식해 임신을 성공시켰다. 남성도 예전에는 무정자증이거나 정자의 질이 좋지 않으면 임신을 포기해야 했다. 최근에는 정자를 인공적으로 처리해 활동성을 강화한 다음 난자에 주입하는 기술이 개발돼 불임 남성의 고민을 덜었다.

 정부의 지원도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까지 인공수정에는 50만원씩 3회까지, 시험관 아기 시술은 150만원씩 3회까지 지원했다. 보건복지부 가족건강과 박재금 사무관은 “올해부터 시험관 아기 시술 지원비가 180만원, 지원 횟수는 4회까지 는다”며 “불임 부부 지원은 저출산 대책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만큼 경제적 지원은 계속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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