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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생각은…

광화문 현판, 글씨까지 바꿀 이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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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정우
서예가·심은미술관장

지난해 광복절 행사에 맞춰 복원된 광화문 글씨를 보고는 너무 놀랐었다. 그 현판이 앞으로 수백 년 이상 그곳에 걸려 있을 것을 생각하니 서예가의 한 사람으로서 참담함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그런데 불과 3개월도 못 돼 금이 가고 찢어져 현판목을 새롭게 구해 건다는 소식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참에 잘됐다는 안도의 마음도 든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재임 시절 지금은 고인이 되신 여초 김응현 선생의 병석을 찾아가 “어서 쾌차하셔서 광화문 글씨를 쓰셔야지요”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우리나라 최고의 서예가인 여초 선생이 광화문 글씨를 쓰는 것으로 결정된 사실을 여러 차례 공석에서 밝힌 적이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1866년 고종 중건 당시 영건도감(營建都監) 제조(提調)인 무관 임태영 훈련대장의 희미한 글씨를 디지털로 복원해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중건 당시 광화문 현판은 임 대장이 붓글씨로 쓴 것을 가지고 각인한 현판글씨였다. 하지만 현재 복원돼 걸려 있는 글씨는 붓글씨가 아니라는 점이다. 서예가나 양식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 글씨를 보면 붓글씨라기보다 도안글씨에 불과하다는 것을 대번 느낄 것이다.

 중앙일보 지난해 12월 30일자 2면에 기사화된 임 대장의 원판과 복원판을 비교해 보면 확실히 다르다. 광(光)자의 길이와 각도가 완전히 달라졌고, 화(化)자와 문(門)자에서도 각도와 획 간의 공간이 맞지 않고 답답하게 되어 있다. 광화문 세 글자의 전체도 원판은 글씨가 씩씩하고 시원하면서도 기개가 살아 있는 느낌을 준다. 반면 복원된 글씨는 컴퓨터로 재생해 확대하다 보니 생동감은 온데간데 없고 나약하고 맥없는 도형에 불과한 글씨가 되었다.

 붓글씨는 글씨의 짜임새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정신이 깃든 생동감과 힘차고 강건한 필치, 그리고 유려하면서도 맑은 기운이 감도는 청초함을 으뜸으로 삼는다. 복원된 글씨는 어느 것 하나 부실하다. 중국·일본·대만 등 아시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길거리의 간판들을 보며 살아 숨쉬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것은 모필(붓)의 위대함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광화문 글씨를 쓸 사람이 그렇게 없단 말인가. 이제 원로와 중진작가들은 광화문 글씨 얘기만 나오면 창피해서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되었다. 천년만년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대한민국 간판 건물의 명패가 이 모양인데도 서예가들은 모두 입 다물고 왜 정치인들에게 맡겨두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제는 말을 해야 할 때다.

 이 시대에 진정 글씨를 쓸 사람이 없다면 방법은 있다. 대한민국 5000년 역사를 통틀어 제1인자로 추앙 받고 있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있지 않은가. 선생의 글씨에는 ‘광’자도 ‘화’자도 ‘문’자도 참으로 많다. 이 글씨를 집자해 쓰면 어떻겠는가.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 개인 한 사람의 문제 제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서단의 문제로 보고 답답한 심정을 전 국민과 서예가, 그리고 관계되는 모든 분께 충심으로 말씀드리니 재고해 주실 것을 간곡히 바란다.

전정우 서예가·심은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