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 단속권 팔아 넘긴 경찰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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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해 7월 충북 청주흥덕경찰서장으로 부임한 홍모(58)씨. 퇴임 후 고향인 괴산군에서 군수 출마를 생각하고 있던 홍 서장에게 고향 선배인 오락실 업주 김모(73)씨가 접근했다. 김씨는 “불법 오락실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는 데 내가 앞장서겠다”며 “홍 서장이 ‘명품 서장’이 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가만히 앉아서 단속 실적을 올릴 수 있는 마당에 홍 서장은 제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후 김씨는 서장과의 친분을 내세워 오락실 업주들에게 접근했다. 사전에 단속정보를 알려주고 경쟁업소까지 정리해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김씨는 업주들에게서 받은 경쟁업소 명단을 홍 서장에게 넘겼다. 업주들이 지목한 불법 오락실을 단속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당시 청주흥덕경찰서 관내에는 6개 오락실이 영업 중이었고 김씨에게 동조한 업주는 3명이었다. 브로커 김씨가 경찰의 오락실 단속 업무를 지휘한 셈이다.

 김씨는 알고 지내던 유모(41) 경사를 오락실 단속경찰관으로 배치해줄 것을 홍 서장에게 요구했다. 유 경사는 업주들이 지목한 업소를 중심으로 단속에 나섰다. 그는 김씨에게 단속정보를 흘려주고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았다.

홍씨가 경찰서장으로 재직하는 1년간 청주흥덕경찰서는 충북 지역 11개 경찰서 가운데 오락실 단속 실적 1위를 차지했다. 분기별 단속 실적은 15건 정도로 다른 경찰서의 2~3배였다. 유 경사는 ‘실적 우수’로 지방경찰청장 표창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엄모(53)씨 등 오락실 업주 3명에게서 관리비 명목의 ‘관비’를 받아 매달 홍 서장에게 전달했다.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1년간 22차례에 걸쳐 건네진 돈은 5150만원. 돈이 오간 곳은 홍 서장의 관사였다.

 청주지검은 29일 홍씨와 김씨를 구속 기소했다. 뇌물을 준 오락실 업주 2명을 구속하고 1명은 지명수배했다. 단속정보를 흘린 유 경사는 불구속 하고 단속정보를 제공한 윤모 경사를 징계하도록 경찰서에 통보했다.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7월 정기인사 때 충북경찰청 경무과로 발령 난 홍 서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아직까지 사표가 수리되지 않았다. 유 경사는 파면됐다.

청주=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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