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과 조용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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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이 대중가수를 무대에 세우는 것은 '문호개방' 인가. 아니면 상업적 인기에 편승한 돈벌이인가.

예술의전당이 오는 12월 10~12일 오페라극장에서 밀레니엄 기획공연으로 '조용필 라이브 콘서트' 를 연다고 하자 음악계에서는 '클래식 음악의 마지막 보루가 무너졌다' 는 반응들.

처음부터 다목적 홀로 설계돼 객석 수가 너무 많고 음향이 좋지 않아 클래식 연주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세종문화회관(3천8백석) 이 팝공연을 유치하는 것은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지만, 객석 2천3백석 짜리 오페라 전용극장이 자체 기획공연으로 크로스오버 무대도 아닌 대중가수의 단독 공연을 마련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것.

세종문화회관에서는 89년 이후 파트리샤 카스.장 자크 골드만 등 외국 가수는 물론 조용필.나훈아.패티김. 최희준.이미자. 김종서.이문세. 이현우.신승훈. H.O.T 등의 국내 가수들의 대형 팝공연을 유치해왔다.

예술의전당측은 "조용필은 대중가수라기 보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 라며 "이번 공연을 신호탄으로 국민적 지지도가 높고 음악성을 평가 받은 대중가수에게 오페라극장의 문을 점차 개방해 나갈 계획" 이라고 말했다.

조용필은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소속 작사가와 작곡가 1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서 '20세기 한국 최고의 가수와 노래(돌아와요 부산항에) ' 로 선정되는 등 예술성과 음악성 면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민가수라는 점에서는 의의를 달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하지만 예술의전당내 오페라극장은 세종문화회관이나 같은 건물 내에 있는 토월극장.자유소극장과는 달리 오페라.발레.뮤지컬 전용극장으로 지어진 것.

이곳에서는 오케스트라 공연이나 바이올린 독주회, 심지어 오페라 가수의 독창회도 허용되지 않는다. 하물며 신파조 악극에 이어 대중가수 공연에까지 자리를 내주는 것은 적자를 메우기 위해 내놓은 설립취지에 어긋나는 고육지책(苦肉之策) 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예술의전당은 올해 같은 장소에서 오페라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 '심청' 등 국내 초연작이 흥행에 실패했다.

또 예술의전당 국정감사 때마다 '대중가수에게 무대를 개방하라' 고 주문해온 정상천(자민련) .최희준(국민회의) 의원도 이번 결정에 큰 '기여' 를 한 셈이다.

다양한 예술장르를 포용하려는 노력에는 찬사를 보낸다.하지만 예술의전당의 '문턱 낮추기'는 대중가수나 록콘서트에 토월극장.자유소극장.야외무대를 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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