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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IT 화두는 ‘따뜻한 융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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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경인년(庚寅年)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신묘년(辛卯年)이 코앞이다.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지난 한 해도 지구촌 곳곳이 후유증을 앓았고, 국내에서는 천안함 사건과 북한의 연평도 도발로 온 국민이 불안하고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역술인들은 올해보다는 내년이 조용한 한 해가 될 거라고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분야를 막론하고 변화의 속도나 방향을 정확히 예측하기 힘들다.

정보기술(IT) 분야 역시 미래를 예측하는 데는 외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태도가 유용할 수 있겠다. 올해를 장식한 IT업계 화두는 단연 ‘스마트폰’이었다. 여기서 시작한 ‘스마트 열풍’은 스마트 워크와 스마트 홈, 스마트 빌딩으로까지 이어져 기존의 모든 것이 ‘스마트화’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 이하 ‘앱’)은 휴대전화를 연결수단에서 정보수단으로, 예서 한 차원 더 나아가 생산수단으로까지 발전시켰다. 이런 추세가 내년엔 더욱 가속화될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스마트화와 관련한 새로운 양태의 서비스와 산업들이 기술의 정교함과 다양성에 힘입어 대량으로 선보일 것이라는 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변화를 주도할 핵심은 바로 ‘스마트 융합’이다. 그 출발점에 IT 서비스의 진화가 있다. 기존 유·무선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은 물론이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위치기반서비스(LBS) 덕분에 시공간으로 얽힌 인간관계는 더욱 치밀해지고 새로운 ‘소셜 경제활동’이 대대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이런 인간관계는 오히려 ‘개인화’를 부추겨 자기관리를 위한 개인 서비스의 필요성이 부각되리라 본다.

IT가 사회 전반의 모든 영역을 민감하게 감지해 개개인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일종의 ‘최첨단 지진계’ 역할을 하리라는 것이다. 그중 신종 비즈니스로 유력한 게 도우미 서비스다. 가령 “오늘 저녁 아내와 로맨틱한 이탈리아 식당에 가고 싶다”고 속삭이면 휴대전화는 ‘주인’의 평소 습관이나 경제 사정까지 고려해 적절한 장소를 찾아준다. 물론 그 전에 “식사 뒤 일정도 알아볼까요?”라는 질문을 날려준다. 이쯤 되면 IT를 일상의 판타지까지 실현시켜주는 ‘알라딘의 램프’라 봐도 좋겠다.

더 실용적이며 개인 삶의 질을 향상시켜 주는 도우미 서비스는 의료 분야에서 나올 것이다. 당뇨 등 만성질환자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몸 상태를 체크하고, 이를 의사와 공유해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있게 한다. 레저산업도 IT 융합이 기대되는 분야다. 자전거를 탈 때 주행거리와 소모 칼로리를 계산해 준다거나 등산화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붙여 조난사고에 대비하는 서비스도 가능하다.

 또 다른 차원의 융합은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의 융합이다. 현실세계의 숱한 정보들을 가상세계로 보내 그 속에서 오히려 현실을 파악하고 문제 해결까지 하는 시대가 됐다. 특히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 기술은 가보지 않은 곳을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또 인터넷과 연결된 각 사물이 보내오는 정보를 통합해 가상공간에서 미리 시뮬레이션을 수행함으로써 실제 생산 때 효율적인 자원 배분 등을 할 수 있다. 외국의 보험회사들은 가입자의 차에 블랙박스를 달아 운전 습관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 부과하기도 한다.

 미래는 IT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융합이 일어날 것이다. 기술 발전의 결과라기보다는 융합을 통해 좀 더 인간친화적 방향으로 발전하려는 일종의 진화다. 이런 융합의 최종심급(最終審級)은 ‘인간의 뇌’에 있다. 이야말로 지상 최고의 융합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내년은 인류 전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 ‘따뜻한 융합’이 시작되는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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