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유통조직과 손잡고 히로뽕 판 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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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마약사범을 봐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고 마약을 직접 판매까지 한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뇌물수수 등)로 이모(47) 경사를 구속 기소했다고 26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2007년 서울의 한 경찰서 마약수사팀에 근무하던 이 경사는 마약사범 이모(52)씨가 구치소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히로뽕을 투약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하지만 이씨로부터 300만원을 받고 상부에 허위 제보라고 보고해 사건을 무마한 혐의다.

 서울의 다른 경찰서로 옮긴 올해 6월에는 검찰의 지명수배를 받고 있는 이씨로부터 ‘수배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청탁을 받고 “3000만원을 달라”고 요구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경사는 이씨를 체포하지 않고 동료들과 술을 마신 뒤 220만원가량의 술값을 대신 내게 하는 등 모두 320만원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경사는 지명수배 중인 이씨에게 모발 탈색으로 마약 성분을 제거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등 체포 시 대응 요령도 알려 줬다고 검찰은 밝혔다. 또 이씨 집으로 링거액을 배달해준 사실도 드러났다. 링거액이 혈액 속 마약 성분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검찰 조사 결과 이 경사는 히로뽕을 파는 등 직접 마약 거래에도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껏 경찰관이 수사과정에서 압수한 마약을 팔다 적발된 사례는 있었지만 마약 유통조직과 손잡고 히로뽕을 판 경찰관이 검거된 것은 처음이다. 이 경사는 올해 8월 이씨가 “히로뽕을 구해 달라”고 부탁하자 부산의 마약판매상을 통해 히로뽕 10g을 구한 뒤 이씨에게 450만원을 받고 판매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 경사는 적발될 것에 대비해 판매 대금을 집에서 오토바이 퀵서비스로 받았다. 히로뽕은 선물세트로 위장해 고속버스 택배로 전달하는 치밀함을 보였다”고 전했다.

 또 이 경사는 지난달 이씨가 체포되자 이씨에게 “소변 누지 마”라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현장으로 가 다른 사람의 소변을 넣은 콘돔을 몰래 전해 주는 방법으로 ‘오줌 바꿔치기’를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한동안 조사에 차질이 빚어졌다. 수사팀 관계자는 “이 경사는 동료 경찰관이 의심하지 않는 점을 이용해 접견 금지 상태인 마약사범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며 “공범과 통화하게 해 증거 인멸하는 것을 도왔다”고 말했다.

 이 경사는 이씨가 검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변호사를 소개해 주고 변호사비 중 1300만원을 가로채기도 했다. 이씨 몰래 변호사를 찾아 “선임료를 깎아 달라”고 말해 돌려받은 돈을 자신이 챙긴 것이다.

 김희준 강력부장은 “이씨는 이 경사가 현직 경찰이란 점을 믿고 품질 좋은 히로뽕을 구해줄 것으로 기대했다고 한다”며 “마약 단속 경찰관이 마약 조직과 유착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준 사례”라고 설명했다. 마약사범 이씨는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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