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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과 ‘워낭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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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남호경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 위원장

무쇠 가마솥에 여물이 익을 때는 특유의 구수한 냄새와 함께 솥과 솥뚜껑이 맞닿은 틈새에서 물이 흘러내린다. 마치 눈물처럼 줄기가 돼 흘러내려 솥의 눈물 혹은 ‘여물의 눈물’로도 불린다.

 지난달 29일 경북 안동에 처음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전국 한우농가에서 여물의 눈물이 사라졌다. 대신 죽음을 목전에 둔 소의 눈물과 농가의 한숨 소리만 있을 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농가 입장에서는 제대로 키워 제값을 받고 내다 팔아야 키운 보람이 있을진대, 미처 시장에 내놓지도 못하고 생매장해야 하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여기에다 소비자들의 막연한 심리적 불안감으로 쇠고기 소비마저 줄어 구제역에 감염되지 않은 농가와 음식점들도 덩달아 피해를 보고 있다. 그야말로 지역경제 자체가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이미 알려져 있듯이 구제역은 발굽 달린 동물에게만 전염되는 병이다. 이 때문에 구제역이 인체에 직접 감염되는 일은 없다. 설령 구제역에 감염된 쇠고기라도 50도 이상에서 익힐 경우 바이러스 자체가 사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막연한 심리적 불안감으로 쇠고기 소비를 줄이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적극적으로 쇠고기 소비를 하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 농촌을 돕는 길이다.

 과거 우리에게 소는 훌륭한 재테크 수단이자, 든든한 일꾼이었다. 형이 대학에 들어가고 누이가 시집을 갈 때 입학금과 혼수비용은 소의 몫이었다. 요즘이야 한 집에서 소를 여러 마리씩 키우지만, 과거에는 암송아지를 사다 키워 송아지를 낳기 전까지는 대부분 한 마리씩 키웠다. 소를 키우는 일은 대부분 그 집 자식들의 몫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여름이면 꼴을 베다 먹이고, 겨울이면 마른 짚을 작두질로 먹기 좋게 잘라 여물을 끓였다. 꼴 베는 일이나 여물을 끓이는 일이 하기 싫을 때는 소는 아이들에게 귀찮은 존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키운 소가 우시장으로 끌려 나갈 때는 마음 한구석이 휑한 경험은 농촌 출신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제 곧 연말이다. 올겨울은 동장군이 매섭게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한다. 동장군이 매서울수록 구제역 발생 지역의 시름은 깊어질 것이다. 집집마다 적게는 몇 마리, 많게는 수십~수백 마리의 자식 같은 소를 하루아침에 잃고 시름에 잠겨 있을 그곳을 돌아봄은 어떨까. 몇 년 전 태안 앞바다가 기름에 잠겼을 때 우리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바위마다, 모래사장마다 쪼그리고 앉아 기름을 닦아냈다. 그 결과 세계인이 놀란 태안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이제 안동을 비롯해 전국 곳곳이 우리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하회(河回)를 둘러보고, 무량수전을 감상하면서 우리들 마음속 ‘워낭 소리’를 들을 때가 아닌가 싶다. 직접 가는 것이 어렵다면 오늘 저녁엔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쇠고기 한 근을 사 들고 귀가하는 것은 어떨지. 그 옛날 아버지처럼.

남호경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