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중요한 건 음이 아니라 음들 사이의 간격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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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란 클리블랜드라는 미국인이 있습니다. 2008년 90세로 작고할 때까지 워낙 다양한 일을 해 직업이 뭐라 꼽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뉴딜정책을 돕던 스물한 살짜리 인턴사원으로 출발해 제2차 세계대전 피해 국가를 지원하기 위한 유엔구제부흥기관(UNRRA) 부관장, 시사잡지 ‘더 리포터’ 편집인, 미국 최고의 행정대학원 시러큐스대 맥스웰스쿨 학장, 케네디 대통령 밑에서 국무부 차관보, 존슨 행정부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대사, 베트남전 반전 시위가 한창일 때 하와이대학교 총장, 그리고 나이 여든셋 되던 1991년부터 2000년까지 다국적 사회·자연과학, 인문, 예술 전문가 500명으로 구성된 민간단체 ‘월드아카데미’ 회장을 맡았습니다. 대단히 경력이지요?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장두노미(藏頭露尾)’를 선정했을 때 그의 저서 『책임지지 않는 사회, 보이지 않는 리더(Nobody In Charge)』를 읽고 있었습니다. 장두노미가 2010년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한마디인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그보다는 책 제목과의 우연한 어울림이 제 촉각을 움직였지요. 장두노미가 ‘머리는 숨겼지만 꼬리는 드러난 상태’를 일컫는 말이라잖아요. ‘진실을 숨기고 발뺌하려는 헛된 노력’이라는 속뜻이 얼핏 책 제목과 들어맞습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의 말은 그런 게 아닙니다. 벌써 장두노미란 말을 가지고 권력을 비꼬는 말풍선이 어지러이 날고 있지만, 그런 비생산적 언어유희보다 클리블랜드의 조언을 들어보는 게 유익하리라 저는 믿습니다.

 클리블랜드가 말하는 ‘책임지지 않는 사회’란 책임을 회피한다는 게 아닙니다.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오늘날 사회가 그렇다는 거지요. 과거에는 극소수 리더들이 제반 분야의 정책결정을 현명하게 내려 사회를 이끌었습니다. 최소한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로 정보량이 가위 ‘익사(溺死)’할 만큼 많아지고, 인터넷을 무기로 독점의 벽을 깨뜨린 정보가 밑바닥까지 무한 확산되는 시대에 모든 분야를 통틀어 리더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모든 구성원이 부분적인 책임을 져야 하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거든요. 이때 스스로 책임을 지고자 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바로 리더라는 게 클리블랜드의 주장입니다. 그것이 바로 21세기형 리더십, 곧 ‘보이지 않는 리더’라는 거지요.

 영국의 사상가 이사야 벌린은 말했습니다. “전문화가 가속될수록 전체적 책임을 떠맡을 만한 지식을 갖춘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균형적 사고를 갖추지 못한 전문가들에게 의지하다가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몰리기도 한다.” 자기가 아는 것만 고집하다가 낭패를 보고 구성원들을 고생시키는 현실의 많은 리더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21세기형 리더는 ‘스페셜리스트’를 넘어 ‘제네럴리스트’가 돼야 합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전문성과 아이디어를 한 줄기 에너지로 벼려낼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바이올린 거장 아이작 스턴에게 누가 물었습니다. “모든 연주자는 똑같은 악보대로 연주합니다. 그런데 왜 어떤 연주는 훌륭하고 어떤 건 그렇지 못한가요?” 스턴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중요한 것은 음이 아니라 음들 사이의 간격입니다.” 리더의 능력이란 단편적 사실을 분석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그 사실들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연결하느냐에 있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핵개발, 무기 판매, 빈곤, 환경 파괴, 자원 고갈처럼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문제들을 어느 하나에만 매달린다 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클리블랜드가 반세기에 걸쳐 다양한 경력을 무리 없이 소화해낼 수 있었던 건 그런 통섭적 사고를 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이 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책임을 지는 리더의 자세입니다. 자기 전문분야에만 갇혀 있는 사람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거죠. 굳이 말한다면 그런 사람이 장두노미하고 있는 겁니다. 혹시 내가 그러지는 않은지 돌아보십시오. 클리블랜드는 미국 대통령 6명을 보좌한 경력을 가진 학자 존 가드너의 말을 인용합니다. 그 말을 결론으로 삼아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를 열어가고자 한다면 다양한 전문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들이 국가적 중대사에 의견을 적극 개진해야 한다. 단, 그들은 전문분야의 참호에서 빠져나와 전쟁터 전체를 바라봐야 한다.”

중앙일보 j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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