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뉴 클래식 스타 누가 될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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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호 05면

따끈한 신인을 소개하겠습니다. 이름은 마르틴 그루빙거(Martin Grubinger 사진). 1983년 오스트리아 태생입니다. 이 사람만큼은 꼭 동영상으로 만나길 권합니다. 베를린은 여름마다 야외 음악제를 열죠. 발트뷔네, 즉 숲 속의 음악회인데요, 올 여름 그루빙거가 출연한 ‘충격 영상’을 찾을 수 있습니다. 퍼커셔니스트(Percussionist), 즉 타악기 연주자입니다. 금발 머리에, 몸에 적당히 붙는 검은 티셔츠를 입고 각종 악기를 열심히 두드립니다. 음표 두 개는 넷으로 쪼개지고, 16개ㆍ32개, 셀 수 없을 때까지 잘게 부서집니다. 빠를 뿐 아니라 정확합니다.

Q 뉴 클래식 스타 누가 될까?

그루빙거는 세계적 오케스트라 여러 곳에서 타악기를 다뤘습니다. 뮌헨 필하모닉과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등의 단원이었죠. 오케스트라 맨 뒷줄에 있었겠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입니다. 2006년 독일 본에서 열린 베토벤 페스티벌에 참가해 ‘퍼커션 플래닛’, 즉 ‘타악기 세상’, 어쩌면 ‘타악기 천국’을 제목으로 공연했습니다. 피아노 영재, 바이올린 신동은 많지만 타악기 천재는 흔치 않습니다. 공급도 수요도 적었던 탓입니다. 독주 악기로 인식된 게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타악기는 악기 중의 악기가 될 것입니다. 퍼커셔니스트들도 지금보다 더 큰 스타가 될 것입니다. 두드림, 즉 리듬이 현대 음악의 주인이기 때문이죠. 20세기 이후 작곡가들은 멜로디ㆍ화음보다도 리듬에 매혹됐습니다. 라벨 ‘볼레로’가 단순한 멜로디에도 현대 청중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이유일 겁니다.

그루빙거는 리듬의 출세와 더불어 커 나갑니다. 6~7세기의 그레고리안 성가(聖歌)에 각종 타악기를 섞은 데뷔 앨범을 이달 냈더군요. 아프리카ㆍ중동 지역의 타악기까지 결합해 1500년 전 성가를 미래의 노래로 바꿔버렸습니다. 아찔한 천재성이 음반 곳곳에서 튀어나옵니다. 이처럼 퍼커셔니스트는 한 악기만을 다루지 않습니다. 두드리면 소리 나는 모든 것이 재료입니다.

또 타악기는 자유롭습니다. 레퍼토리가 적기 때문입니다. 오케스트라 뒷줄의 이른바 ‘소수 악기’들은 연주할 수 있는 곡이 많지 않습니다. 작곡가들이 전통적으로 ‘주류 악기’ 위주의 작품을 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이유 때문에 ‘2등 악기’들은 마음껏 창작할 수 있습니다. 현재 활동하는 대부분의 타악기 주자들이 작곡ㆍ편곡에 능한 멀티플레이어인 원인입니다.

그루빙거는 오케스트라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고전ㆍ낭만시대 음악에서 분위기를 고조해 주는 역할, 오케스트라의 박자를 흐트러지지 않게 잡아주는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동영상을 보면 그 정도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랑이 느껴집니다. 타악기ㆍ리듬에 대한 뜨거운 애정입니다. 이처럼 사랑에 기반한 타악기의 도약, 시간을 두고 지켜볼 만한 일입니다.

A 가능성 무한한 타악기에 주목하세요

※클래식 음악에 대한 궁금증을 김호정 기자의 e-메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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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씨는 중앙일보 클래식ㆍ국악 담당 기자다. 서울대 기악과(피아노 전공)를 졸업하고 입사, 서울시청ㆍ경찰서 출입기자를 거쳐 문화부에서 음악을 맡았다. 읽으면 듣고 싶어지는 글을 쓰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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