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START 비준, 오바마 드라이브 통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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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케리(민주)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왼쪽)과 리처드 루거(공화) 상원의원이 22일(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새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이 비준된 뒤 이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특별 기자회견을 열어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미국 상원은 22일(현지시간) 핵무기 숫자를 서로 줄이기로 한 러시아와의 새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비준했다.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창해 노벨평화상까지 거머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주효했다는 평가다.

미 상원은 이날 본회의에서 START 비준안 표결을 실시해 찬성 71, 반대 26으로 가결했다. 외국과의 협정 비준에 필요한 의석수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67명)이다. 이날 표결에서 민주당 소속 의원 56명 외에 무소속 2명과 지도부의 방침에서 이탈한 공화당 의원 13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오바마 대통령의 표현대로 ‘미·러 양국관계의 재설정(Reset)’이라는 상징성을 지닌 새 START는 양국의 전략 핵무기 숫자를 현재의 2200기에서 1550기로 감축하고, 상호 무기 감시·모니터 검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골자다. 1994년 비준돼 지난해 말 효력이 만료된 감축 협정을 대체하기 위한 협정으로, 지난 4월 오바마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서명을 마쳤다. 이로써 미국 내 비준 과정은 완료됐다. 러시아 의회가 같은 협정을 비준하는 대로 발효될 전망이다.

 당초 공화당 상원 지도부는 연내 표결에 반대했다. 미국이 유럽에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구축할 경우 러시아가 협정에서 탈퇴할 수 있다고 한 조항이 쟁점이었다. 공화당은 이 조항이 삭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내년 의회에서 차분히 다시 논의해 보자”며 지연전술을 폈다. 반면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은 이 조항은 법적 구속력이 없으며 미국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맞섰다. 11월 중간선거의 결과로 내년 새 의회의 상원 의석수가 줄어드는 민주당으로선 이번 회기에서 협정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직접 공화당 의원들을 만나 설득작업을 벌이는 한편 영향력 있는 인사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퇴임 후 10년 만에 백악관 기자실을 방문해 조속한 START 비준 필요성을 역설했다. 헨리 키신저, 조지 슐츠, 제임스 베이커, 로런스 이글버거, 콜린 파월 등 과거 공화당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인사들도 “북한과 이란 같은 불량국가들의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러시아와의 협력이 중요하다”며 거들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비준안 통과 후 백악관에서 특별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START는 최근 20여 년 동안 가장 의미 있는 무기감축 협정이며, 우리를 더욱 안전하게 하고, 러시아와 함께 핵무기를 감축시킬 것”이라고 환영했다. 그는 또 “초당적인 START 비준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안보를 위해 공조한다는 강력한 신호를 전 세계에 보내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홀가분해진 오바마 대통령은 이후 하와이로 연기했던 크리스마스 및 신년 휴가를 떠났다.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은 “우리는 이 협정을 통해 국제사회가 북한과 이란의 핵 야욕을 억제하는 데 단결해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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