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고 빠지고 … 북한 도발엔 ‘빨치산 DNA’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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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이 연평도 사격훈련을 실시할 경우 ‘제2, 제3의 자위적 타격을 가하겠다’고 위협해온 북한은 20일 아무런 대응조치도 하지 않았다. “일일이 대응할 가치를 못 느꼈다”는 말로 명분을 찾았다. 허(虛)를 보이면 치고 들어왔다가도 강하게 나가면 뒷걸음치는 빨치산식 전법을 떠올리게 한다.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북한 수뇌부의 머리엔 빨치산의 DNA가 그대로 살아 있다”며 “잠시 찾아온 평화에 한숨을 돌리는 사이, 성동격서(聲東擊西)식의 도발을 감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수(정치학) 서강대 교수는 “북한은 내심 우리 군의 압도적 무력 앞에서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라며 “남한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한 도발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6·25 전쟁 때 북한이 남침한 시각은 일요일 새벽 4시였다. 88 올림픽을 10개월 앞두고 벌인 KAL기 폭파 테러도 타이밍을 노린 테러였다. 북한은 2002년 6월 한·일 월드컵 축제가 한창이던 때 2차 연평해전을 일으켰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월드컵 경기 응원차 일본을 방문하고 있을 때였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국민 정서는 ‘남북 사이 군사적 충돌은 이제 없다’고 믿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지난 3월 천안함 폭침을 감행한 시간도 금요일 밤이었다. 군 수뇌부와 천안함 장병들이 주말의 느긋함에 빠져 있을 때였다. 북한은 남한 사회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무사히 마친 뒤 경계의 끈을 놓고 있던 지난달 23일 연평도를 포격했다.

 반면 우리가 강하게 나갈 때 북한은 한발 뒤로 물러섰다. 76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발생한 도끼 만행사건도 한 예다. 미루나무 제거작업을 하던 미군 2명을 북한군이 도끼로 살해한 뒤 북한은 작업을 계속할 경우 전쟁도 불사하겠다며 위협했다. 하지만 한·미 연합전력을 앞세우고 작업을 하자 미동도 하지 못했다.

88~92년 노태우 정부는 북한의 동맹국 중국·러시아와 수교하고 미국과 협력하면서 북한을 압박해 나갔다. 그 5년 동안 북한은 어떠한 형태의 도발도 저지르지 않았다.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력연구센터장은 “북한은 김정일 일가의 정권을 잃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며 우리가 강하게 나갈 때 물러선다”고 말했다.

 백 센터장은 “북한은 이번에 중국이 북한 편에 설 것이란 확신을 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서해에서 치고 빠지면서 NLL(북방한계선) 무력화를 계속 시도할 것”이라며 “한국의 민간 선박을 나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도 “2차 연평해전을 제외하면 북한이 같은 형태의 도발을 반복한 적은 거의 없다”며 “가급적 책임은 회피하면서 발뺌할 수 있는 방식을 선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북한이 특수부대를 동원해 수도권의 LPG 저장 시설 등을 테러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북한은 실제 지난 1월 연평도를 비롯한 서해 5도 공격계획을 세우면서 포항과 울산 등 후방 산업도시에 대한 동시 타격 시나리오도 함께 검토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영수 교수도 “고정 간첩을 활용해 백화점, 학교 등에 테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1월 18일)·김정일(2월 16일) 생일, 인민군 창건일(4월 25일) 등이 몰린 3~4개월 안이 될 수 있다고 김 교수는 내다봤다.

김수정 기자

허점 보이면 치고 강하게 나가면 잠잠

① 서해 NLL 무력화 노려 민간선박 나포 가능성

② 특수부대 동원해 LPG저장소 테러

③ 포항·울산 등 산업도시 동시 타격 시나리오도

④ 김정일 부자 생일 때 등 서너달 내 가능성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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