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이 사람] 마르셀 뒤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마르셀 뒤샹 : 현대 미학의 창시자

베르나르 마르카데 지음

김계영 외 옮김, 을유문화사

764쪽, 3만2000원

타인의 칭찬에 인색하기 그지없던 20세기 서구미술의 황제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딱 한 사람 친히 입을 열어 극찬했던 인물이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마르셀 뒤샹(1887~1968)이다. 피카소는 “후대의 예술가들은 뒤샹의 상점을 뒤져 그 포장을 바꾼다”고 뒤샹 예술의 독창성과 위대함을 요약했다. 21세기 예술의 새 방향을 탐험한 백남준(1932~2006)도 뒤샹을 현대 예술가의 전형적 선구자로 기렸다. “20세기 예술의 DNA가 다다(DADA, 기존 체계와 관습적 예술에 반발해 본능·자발성·불합리함을 강조한 문화운동)이고 그 핵심이 뒤샹이라면, 비디오아트는 거기서 나가는 길을 열어준다.”

마르셀 뒤샹은 국제 체스대회에서 입상할 만큼 일상에서 체스 게임을 즐겼다.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귀화하기 5년 전인 1950년, 체스판 앞에 앉아 포즈를 취한 뒤샹. [을유문화사 제공]

 뒤샹은 지금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고 있는 행위의 급진성을 대중에게 인식시킨 당사자다. 1917년 대규모로 생산된 남성용 도기 소변기 하나에 서명을 해 ‘샘(Fountain)’이라 이름 붙여 전시장에 보낸 이후, 그는 ‘레디메이드(ready-made, 기성품의 미술품)’의 발명가로 오늘날까지도 큰 영향을 끼쳐왔다. 이런 까닭에 뒤샹의 일상생활 속 사건을 세심하게 점검하는 일이야말로 바로 뒤샹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지름길이 된다.

 이 평전의 지은이인 베르나르 마르카데(파리-세르지 국립고등미술학교 미학·예술사 교수)는 뒤샹이 “나는 살아있는 나 자신의 레디메이드”라 말한 것에 주목한다. 또 뒤샹 스스로 예술가와 반예술가를 동시에 부정한 의미로 쓴 ‘아나티스트(anartiste)’란 용어를 유념한다. 무관심의 자유와 게으름의 권리를 일찌감치 깨달았던 뒤샹은 무위 안일을 좋아했고 체스 게임에 몰두했다.

그의 삶과 사랑은 20세기 예술과 지성사를 밝혀 주는 특별한 증언이다. 그의 생은 유언과 같은 다음 한마디로 문을 닫는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기에, 내가 살아 있을 때와 죽을 때의 차이점을 전혀 발견하지 못한다.”

정재숙 선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