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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음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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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엄을순
문화미래이프대표

단무지 빠진 김밥. 내 딸들은 그런 김밥만을 먹는다. 내게 단무지 없는 김밥은 김밥도 아닌데 말이다. 그냥 반찬과 밥을 김으로 말아놓은 거지. 수제비의 밀가루 반죽도 고기만두만큼 크게 떠 넣어야 그게 수제비다. 이런 요상한 식성. 다 내 탓이다. 단무지를 못 먹는 이유는 1970년대 가난한 유학시절. 단무지가 비싸서 오이피클을 넣고 해줬더니 단무지 맛을 모르고 자라서 그리됐고, 만두만 한 수제비에 익숙해진 식성은 게으르고 돈도 없고 요리에 재주도 없는 초보 엄마를 둔 결과다. 음식이 곧 문화라고 하던데 그럼 내가 문화 창조자가 되는 셈인가. 이렇게 창조된 ‘엄마표’ 음식이 김밥과 수제비만이 아니다. 식구 모두 좋아하는 냉면. 한국음식 재료가 빈약한 외국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들을 가지고 비빔과 물을 합쳐 놓은 것 같은 그럴싸한 ‘엄마표’ 냉면도 만들었다.

 아주 오래전, 둘째 딸 돌잔치 때였다. 단무지도 살 수 없는 텍사스 오지에서 돌잔치를 하자니 음식 장만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초대할 한국 유학생들에게 피자나 햄버거를 줄 수도 없고. 하지만 이왕 힘들게 음식 장만하는 거 맘을 크게 먹었다. 전체 한국 유학생(110명 정도?)을 다 불러 동네 잔치를 하자고. 내 딸은 모든 사람들한테 축하받아 좋고, 한국음식이 그리운 불쌍한 유학생들 배도 채워줘서 좋고. 그 당시에 많았던 총각 유학생들에겐 큰 기쁨이었으리라. 저렴한 재료로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을 유학생들 부인들이 다 함께 만들어서 별로 힘들진 않았지만 생활비가 모자라 한 달 동안이나 피나는 절약을 하고 살아야 했다. 그날 이후. 남편과 딸들은 친구들에게서 유명인사가 되었다고 난리들이다. “엄마, 애들이 잡채 맛있었대. 내 생일날 그거 해줄 수 있지?” “여보, 애들(박사학위 학생들)이 난리야. 갈비 먹고 한국에 있는 엄마 생각나서 혼났대. 우울할 때 한번씩 먹여 달라는데?” ‘아하, 그렇구나. 요리가 권력이구나. 이 권력을 이용해 집안을 다스려야 되겠다’. 그때부터 집안의 모든 ‘상과 벌’은 음식을 통해 만들어졌다. 상으로 주는 음식도 여러 가지. 말 잘 들은 딸에게는 떡볶이나 꿀호떡. 시험 잘 본 남편에겐 양송이버섯 불고기. 벌로는 그들이 싫어하는 야채 수프. 참~ 쉬웠다. 매 없이 애들을 컨트롤할 수 있고 바가지 안 긁어도 남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게 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너 그거 하면 엄마가 떡볶이 해줄게.” 안 해줘도 괜찮단다. 문방구 앞 떡볶이가 더 맛있단다. “여보, 청소 좀 해주라. 그럼 내가 버섯 불고기 해줄게.” 점심 때 ‘뚝불’ 먹어서 지겹단다. 음, 사방 천지에 널려 있는 한국음식들. 내게 영원한 권력이란 허락되지 않는가 보다. 그러더니, 세월이 흐르고, 애들도 결혼해서 그때 내 나이가 된 지금. 촌스럽고 지겹다던 ‘엄마표’ 음식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음식이 단순히 먹을거리만은 아닌 모양이다. 만두만큼 큰 수제비 덩어리 속에서 어린 날의 자신이라도 찾는가 보다. 이번 크리스마스 가족 모임에는 왕만두만 한 수제비를 만들어야겠다. 그러면 잃었던 권력을 되찾을 수 있으려나.

엄을순 문화미래이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