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동남아 별천지 한바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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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사람들의 얼굴은 마냥 편안해 보였다. 가난조차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그런 마음 씀씀이가 엿보였다. 양곤을 품에 안은, 잔물결 하나 없는 간토지 호수처럼 …. [한·아세안센터 제공]

기억 속의 미얀마와 라오스 이미지는 짙은 회색이다. 버마라는 이름이 더 귀에 익은 미얀마는 더더욱 그렇다. 아웅산 테러, 안다만 해(공중 폭파된 대한항공 858기가 수장된 바다), 가택연금 등. 거센 개방 물결을 타고 있는 베트남·캄보디아 등과는 달리 세상과의 문을 걸어 잠갔던 ‘은둔의 나라’. 그래서 두 나라에 대한 이미지는 고장난 시계처럼 80년대에 그대로 갇혀 있다.

 이제야 겨우 굳게 닫혔던 빗장을 열고 빼꼼히 세상을 엿보고 있는 두 나라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한-아세안센터에서 개최했던 새로운 아시아 지역 여행코스 공모전 입상자들과 함께 입상 지역으로 떠나는 여행이었다. 마음의 거리만큼이나 가는 길은 멀고도 또 멀었다. 집을 나선 지 12시간 만에 입국한 미얀마, 태국 방콕에서 야간 기차를 타고 13시간 걸려 도착한 라오스.

 기억은 과거일 뿐 현재는 달랐다. 거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아니 세태에 찌든 우리네보다 더 편안한 얼굴들, 그 얼굴은 순박하고 순수했다. 그 옛날 우리의 모습도 이랬는데…. 자연을 닮은 것일까. 위압감을 주는 자연이 있는 반면 어머니 품같이 안기고 싶은 그런 자연도 있다. 미얀마와 라오스의 그것은 후자에 가깝다. 아기자기하다. 아무리 칭얼거려도 모든 것을 용서해 주고 감싸줄 것 같은 그런 자연이다. 우리네 그것과 너무 닮아서인지 더욱 친근한 자연이고 그런 자연을 품고 사는 이네들의 얼굴은 편안해 보인다.

 도시를 벗어나면 ‘기억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 시작된다.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 워낭 소리의 한 장면처럼 덜커덩 덜커덩거리며 논둑 길을 걷는 소달구지, 딸딸딸거리며 매연을 토해내는 경운기…. 우리네 70년대와 별반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불편함보다는 살가운 느낌이 든 것일까.

 라오스와 미얀마에서는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2008년 뉴욕 타임스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넘버 원’이라는 라오스는 더 그렇다. 디지털 세상을 사는 사람들 눈에 비친 라오스는 어찌 보면 모든 게 아날로그다. 그래서 라오스는 경이롭고 신비로운 땅이다. 그곳에서 가진 것 없어 모든 게 부족할 것 같지만 마음만은 부유한 사람들, 멀티태스킹에 익숙한 우리와 달리 한 가지씩만 추구하는 사람들, 세상살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세상의 근심과 걱정, 스트레스에 찌들었다면 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미얀마와 라오스다. 나를 내려놓고 새로운 세상의 눈을 뜨고 싶다면 미얀마와 라오스로 가라. 차안(此岸)이 아니라 피안(彼岸)일지도 모르는 곳이다. 

미얀마·라오스=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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