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북한을 돕는 중국의 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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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전략연구중심 부소장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외교전문엔 중국이 한국 주도의 통일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는 내용도 있다. 천안함 침몰이나 연평도 포격에 대해 북한의 책임을 묻지 않는 중국이 이런 생각을 품고 있다는 건 상당한 모순으로 들린다. 중국 지도부는 북한에 벼랑 끝 전술을 중단하라고 하기보단 6자회담 소집을 주장했다. 도발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왜 중국은 북한의 고삐를 쥐지 않는 걸까. 중국과 주한미군 사이의 북한이라는 완충장치를 잃지 않기 위해서란 게 기존의 통념이었다. 남한 주도의 통일을 막기 위해 김씨 왕조를 떠받쳐야 했고, 통일이 중국 안보를 위협하지 않느냐는 우려였다. 북한이 핵실험 등으로 도발할 때마다 중국은 비난받아 왔다. 고질적인 우유부단함과 불간섭주의로 사회주의 이웃을 안심시켜온 모습은 중국이 자신만의 편협한 이익에 매달리고 있음을 전 세계에 광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익은 계량화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중국의 대(對)한국 교역량은 북한의 거의 70배다. 중국이 실리를 중시한다면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신냉전’을 부추길 생각이 전혀 없기에 더욱더 북의 핵 도발 억제에 큰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이 머뭇거리면서 한·미·일이 밀착하는 냉전구도를 자초했다. 중국이 북한을 압박해 주리란 기대를 접으면서 한국은 미국·일본과 군사적 유대를 더 단단히 하고 있다. 북한이 자중하지 않고 중국이 이를 계속 싸고돈다면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의 전략적 대결 구도는 되살아날 수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한물간 이데올로기에 얽매여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지난해 북한과 정상적인 관계 정립을 주장했지만 여전히 북에 대해 집착적인 동지의식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은 한국전을 미국의 침략에 맞선 영광스러운 투쟁이었다고 했다.

 대부분의 중국인은 김정일의 레닌주의 왕조를 싫어한다. 두 나라는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는 북한이 어떤 혐오스러운 짓을 저질러도 저버리지 못한다. 그들의 외교적 가치는 반(反)미·반패권주의와 혈맹이었던 과거 추억에 좌우됐다.

 중국 지도자들은 북한 인민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북한을 무거운 짐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불한당 자식이라도 부모가 버릴 순 없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이런 감성적 유대는 북한 관련 위기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보단 기존 조치들을 답습하게 만든다.

 중국의 대북 정책은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 지도자들이 북한에 대한 심리적 이중성에서 벗어나야만 변화가 가능하다. 다행히 최근엔 중국 지도부가 북한에 대해 획일적인 관념에서 벗어나고 있다. 나는 전면화된 대북 국제공조에 중국이 두려움을 느낄 수 있겠지만, 공조에는 기꺼이 협력해야 한다고 본다. 공조의 현실성과 긍정적인 면에 눈을 떠야 중국이 우유부단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전략연구중심 부소장
정리=이충형 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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