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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진출기업, 경영패러다임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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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지난 12일 방글라데시의 영원무역 공장 등에서 일어난 유혈 사태를 CNN 등 해외언론들이 연일 보도하고 있다.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가 개최된 지 바로 엊그제인데 이번 사태가 어렵게 쌓은 대한민국 브랜드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을지 심히 우려된다.

 나이키·노스페이스 등 미국과 유럽의 유명 스포츠메이커에 납품하는 글로벌 기업 영원무역 현지공장에서 발생한 노사분규 사태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지난 7월 방글라데시 정부는 수년간 고정돼온 최저임금을 80% 인상했다. 영원무역 현지 근로자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던 숙련공으로 최저임금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동일한 수준의 80%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하다 외부투쟁세력이 가세해 폭력 시위로 확산됐다. 급기야 분규사태는 치타공 특구지역 내 월마트와 테스코 등 여타기업으로 번져 갔다.

 최근 아시아 외국인 투자기업에서 벌어진 노사갈등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근로기준 덤핑 유형으로 노동관련법을 준수하지 않거나, 현지 근로자를 폭행하는 등 인간존엄성을 침해한 경우다. 실제로 1990년대에 중국에 진출해 근태(勤怠)가 좋지 않았던 중국 근로자를 닭장에 가둬 중국 언론에 보도된 한국 A영세기업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지난 5월, 수명이 자살한 중국 진출 대만전자업체 팍스콘 사태도 이 유형에 해당한다. A기업과 같이 해외진출 기업의 근로기준 덤핑형 노사갈등의 해법으로는 ▶진출국의 노동관련법을 잘 인식하고 철저하게 준수할 것 ▶통제적이고 차별적인 인사노무관리를 지양할 것 ▶노무관리의 현지근로문화 적응도를 높일 것 등 기업단위 노사관계의 소극적 개선 차원에서의 해법을 주문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지역사회갈등의 희생양 유형이다. 해당 기업의 인사노무관리가 여타 토종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잘 운영돼도 지역의 정치사회 갈등이 외국인 투자기업을 타깃으로 삼아 대폭발·분출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기업들은 손쉽게 현지인의 사회적 갈등의 분풀이 대상이 되기도 하며, 외부투쟁세력들이 개입해 현지기업에 난입, 폭력과 기물 파괴가 자행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자국의 최저임금을 상회하는 임금을 지불하고 상대적으로 나은 근로조건을 제공했음에도 외부 환경에 의해 노사분규가 발생한 영원무역 분규는 두 번째 유형에 해당된다.

 최근 아시아권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의 갈등 유형이 점차 첫 번째에서 두 번째 유형으로 옮아가는 걸 주목해야 한다. 지역사회갈등 희생양 유형의 경우 그 상징성 때문에 영원무역처럼 글로벌 브랜드를 가진 대기업일수록 발생 가능성이 더 크다. 설상가상으로 일단 발생하면 선진국에서 이를 맹렬히 비판하며 브랜드 가치를 추가 하락시킨다는 점에서 첫 번째 유형과 큰 차이를 보인다. 섬유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영원무역에 대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상대국인 미국의 언론과 섬유단체에서 혹독한 비판을 쏟아내는 것도 이에 기인한다. 두 번째 유형에 대해 과거처럼 최저임금 준수와 같이 현지 진출 기업 노사관계의 소극적 개선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번 사태는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두 번째 유형의 노사갈등에 대한 해법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해외진출 대기업의 경영패러다임 전환이다. 국제사회는 해외진출 대기업들에 지역사회의 책임(CGR: Corporate Global Responsibility)을 요구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한국 내에서 기업의 노동 및 환경 최소기준의 준수를 넘어서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윤리경영, 환경경영, 투명경영, 신뢰경영 등을 강조하는 분위기와 맥을 같이 한다. 예전에 해외원조에 의존해 가난을 이겨냈던 한국이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면서 ‘후진국의 최소 노동기준을 만족하면 그만이다’는 식의 특혜를 국제사회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게 됐음을 의미한다. 유엔의 노동·환경·인권 관련 글로벌 컴팩트(Global Compact)를 준수하고, G20 의장국이 된 국가 위상에 걸맞은 지구촌 지역사회와의 공감경영과 리더십을 해외진출 한국 기업들에 요구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