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성의학] 한국인의 섹스라이프, 부도 위기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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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콘돔회사인 듀렉스사가 최근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해 의학계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전 세계 14개국의 성인 남녀 1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섹스라이프’에 대한 설문 결과였는데 프랑스인들이 연간 1백51회의 성행위로 1위를 차지했다. 월드컵 축구 우승에 이은 2연패의 쾌거(?)
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렸다는데, 사실 프랑스인들은 결혼 전에는 자유분방한 데이트를 즐기지만 결혼 후에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부부윤리가 엄격한 나라의 하나다. 그래서 결혼 전에 계약결혼이나 혼전동거 등 자유스러운 연애에 익숙한 부부가 서로를 강력하게 잡아두기 위해 섹스 횟수를 늘렸을 것이라는 사회심리학적 분석을 내놓은 의사도 있었다.

다음으로는 미국인으로 1백48회였다. 이에 반해 러시아와 폴란드인들은 가장 섹스에 무심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아마도 정치·경제적 불안이 성욕의 감퇴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여겨진다. IMF 이후 우리나라 남성들 역시 발기불능을 비롯한 성기능장애 환자가 증가해 이를 뒷받침한다.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혼란으로 스트레스가 쌓이고 이를 풀기 위한 방편으로 과도한 흡연과 음주 등이 복합적으로 신체적 장애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 결과 세계인의 연간 성행위 평균치는 1백12번으로 조사됐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몇회 정도일까. 일부 여성 매체의 조사나 환자와의 상담을 통해 얻은 경험에 의한 추정치가 대체로 주 1∼2회임을 감안하면 연평균 1백회 미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섹스라이프’ 조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항목은 행위 시간과 만족도였다. 이 부분에서는 미국인들이 평균 25분으로 가장 정력적임을 증명했다. 그러나 가장 정력적이고 오랜 시간 동안 행위에 열중하는 미국인들 역시 10%만이 파트너를 만족시켜 준다고 응답했는데 그 원인을 조루라고 밝혔다. 세계에서 가장 정력적인 남성들이 10%에 불과한 성공률(?)
을 고백하자 의학계에서는 충격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에도 ‘킨제이 보고서’등을 통해 성행위가 ‘남성들만의 잔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이번 조사는 남성들 스스로 자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에 따라 70∼80%의 남성들이 조루증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던 일부 의사들의 말이 확인되는 계기가 됐다.

이번 조사 결과를 우리나라 남성들의 현실과 비교해 볼 때 횟수의 부족이야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하더라도 질적인 문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여성지의 상담코너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10초 땡’이라든가 평균시간이 3분 미만이라는 조사 등은 날로 심각해질 성 트러블이 사회문제화될 것임을 예견하게 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위축돼 가는 남성들이 성행위에서조차 기를 펴지 못하면 남성으로서의 자존심을 상실하게 되며 이는 곧 자신없는 인생살이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기능을 저하시키는 흡연이나 스트레스를 피하고 규칙적인 운동으로 몸을 가꾸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왜소콤플렉스나 조루증 등의 기능상의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발기부전과 같은 고질적인 성기능장애도 과거에는 신경성으로 보았으나 최근의 현대의학은 50% 이상이 기질적 결함이 그 원인임을 밝혀내고 치료하기 때문이다.

김재영 <김재영비뇨기과 원장·남성학칼럼니스트>

월간중앙(http://win.joongang.co.kr) 제 287호 199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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