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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신구조조정 정부 복안] 땜질 처방땐 투신속병 심화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수차례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았어도 정작 투자신탁 구조조정에 대한 분명한 청사진은 제시하지 않아 시장의 불신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게다가 채권시가평가제나 대우채권 손실분담 원칙을 놓고 정부 부처간에도 손발이 맞지 않아 시장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13일 이기호(李起浩)청와대 경제수석이 "11월 6일까지 투신 구조조정 방안을 매듭짓겠다" 고 밝혀 정부 복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 구조조정 복안 밝히지 않는 속사정은 뭔가〓구조조정을 하기 위해선 우선 대우채권 손실규모부터 산출해야 한다.

그러나 대우 계열사에 대한 자산.부채 실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손실규모를 정하기 어렵다. 게다가 국내외 채권단간에 손실분담을 둘러싼 협상도 이제 겨우 시작 단계다.

이런 상황에서 투신사가 보유하고 있는 대우 무보증회사채나 기업어음(CP)만 정리해줄 경우 무엇보다 해외채권단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란 게 정부 설명이다.

정부가 비싼 값에 대우채권을 사주면 '우리 채권도 똑같은 조건으로 정부가 인수하라' 고 나오기 십상이고 그렇다고 헐값에 정리하면 해외채권단에 희생을 강요한다며 채권회수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해외채권단의 비중이 큰 대우자동차나 ㈜대우.대우전자 등 주요 계열사에 대한 워크아웃 계획의 확정이 지연될 수 있다고 정부는 계산하고 있다.

대우 워크아웃 계획을 정하지 못하면 다시 대우채권 손실규모를 확정하지 못하게 되고 이에 따라 투신 구조조정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적어도 대우 워크아웃 방안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투신 구조조정 문제를 꺼내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다.

정부가 나서서 대우채권 손실분담 원칙에 대한 교통정리를 해줬으면서도 정작 손실분담 비율은 투신운용사와 증권사가 알아서 정하라고 한걸음 물러서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투신이 버텨낼 수 있나〓문제는 구조조정 문제를 덮어두고도 투신이 11월 대란설, 나아가 내년 2월 대란설을 견뎌낼 수 있느냐다.

이헌재(李憲宰)금융감독위원장은 이에 대해 13일 "한국.대한투신을 빼고는 자체 힘으로 해결할 능력이 있으며 한국.대한투신은 정부가 공적자금을 넣어서라도 파산시키지 않겠다는데 왜 의심을 하느냐" 고 반문했다.

李위원장이 이처럼 자신만만한 이유는 우선 대우채권 손실 가운데 투신운용사가 부담할 몫은 수익증권 판매수수료 배분비율인 20~30%밖에 안되기 때문에 대부분 자기자본 범위 안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증권사들인데 상반기 중에만 회사당 수백억원씩 당기순이익을 올려 대우채권 손실 정도는 충분히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적자금을 빨리 넣어야 한다는 업계의 주장은 자신들의 손실부담을 줄여보려는 속셈으로 금감위는 보고 있다.

따라서 투신운용사와 증권사가 충분히 협상을 해 자신들이 책임질 수 있는 데까지 해결한 뒤 최소 공약수를 만들면 이 부분은 공적자금으로 메워주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정부가 투입할 공적자금 규모라도 밝히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투신 구조조정에 쓸 공적자금 규모를 미리 알려주면 그게 곧 손실분담 상한선이 돼버릴 것이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李위원장이 "시장과 게임을 할 때는 인내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고 한 것도 이런 이유를 염두에 둔 말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일부 투신운용사의 경우 손실규모가 지나치게 커 환매조짐이 조금만 보여도 위기를 맞을 수 있고 이 파장이 전체 투신사로 급속하게 확산되는 사태가 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정부의 구조조정 복안〓정부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부분도 내년 2월이다. 대우채권 환매비율은 정부가 보증한다고 한 만큼 내년 2월 8일 이후 대우채권의 95%를 받고 환매하는 게 가장 유리한데 그 후에는 더는 돈을 맡겨둘 유인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때쯤이면 대우채권 손실규모도 정해진다. 그만큼 투신 구조조정에 대한 압력이 거세질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현재까지 정부입장은 투신 구조조정은 은행이나 종금사와 똑같은 방식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투신이 구조조정 위험에 몰릴 경우 보유 주식.채권을 마구 내다팔아 시장 전체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어차피 채권시가평가제는 기존펀드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2001년말께로 연기해놓은 만큼 굳이 강제 퇴출.합병 방식의 구조조정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따라서 내년 2월 8일 이후에도 본격적인 수술보다는 지금처럼 시장안정에 주력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만 이 단계에 가서는 환매가 더 늘 것으로 보여 공적자금의 투입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학계와 업계에서는 부실문제를 근본적으로 수술하지 않는 한 금융시장이 투신사에 볼모로 잡혀있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적어도 대우 워크아웃 방안이 확정돼 대우채권 손실규모가 정해지면 투신사에 대한 수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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