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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가족간의 소송과 조정제도 … 화해로 신뢰 회복했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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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안재홍 변호사

부모와 자식간, 부부간, 형제들간에 벌어지는 민사소송. 이혼, 재산분할, 위자료, 양육문제, 명의신탁해지로 인한 소유권이전등기, 상속재산분할 등등. 요즈음 법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건들입니다.

 현대 한국사회의 각박해지는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타인간의 분쟁보다 가족간의 분쟁은 감정의 골이 깊어 훨씬 치열하고 양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어느 쪽이 소송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그 가족은 파탄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소송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간 소송 중에 진행된 조정절차에서 판사는 당사자의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과거의 일은 여기서 더 이상 얘기하지 말고,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끊고 소송을 계속할 건지 아니면 서로 양보해서 조정할 것인지 생각해 보자. 소송을 계속하면 누군가 한 쪽이 이기겠지만 부자관계 끊는 것만큼 가치가 없다라고 생각한다”라고.

 사실 법정까지 왔다는 것은 관계가 회복되기 어려운 정도로 악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사를 보면 아주 친한 사이라도 별 것 아닌 것으로 오해하고, 해결이 안돼 관계가 멀어지는 경우가 흔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대방한테 바라는 것이 많은 데 오히려 작은 것에 상처받고 상대방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과거의 일을 마음속에서 떨쳐 내기는 어렵겠지만 부자의 관계를 끊는 것보다는 쉽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사건 중에 부부간의 이혼과 위자료소송이 있는데, 소송을 제기했다가 취하하고, 다시 살다가 또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습니다. 처음 소장을 보고, 피고의 얘기를 들으면서 원고가 너무나 거짓말을 잘 하고 나쁜 사람이다라는 선입견을 갖고 답변서를 썼습니다. 그런데 조정에 나가 원고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 부부의 문제는 상대방을 이해해 주지 않은 데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결국 두 번의 조정 끝에 문제가 잘 해결돼 소를 취하하고 다시 잘 살게 됐습니다.

 요즈음 ‘재판부에서 당사자에게 조정을 너무나 많이 권한다’라는 말이 언론을 통해 심심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어느 한 쪽 편을 들어줘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 사건이 진행되면서 모호해 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재판부에서 조정제도를 많이 이용한다고 봅니다. 변호사 비용이라든가 시간, 당사자가 느끼는 스트레스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한다면 비록 당사자들이 최선의 만족을 얻지 못하더라도 서로 양보해 소송을 빨리 종결지음으로써 그로 인하여 얻는 이익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가족 간의 분쟁은 다른 민사사건과 달리 결과에 따라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접근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재판부뿐 아니라 변호사, 조정위원도 가족의 파탄을 막을 수 있도록 당사자가 서로 양보할 수 있는 방안을 시간이 걸리더라도 찾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피곤할 수도 있지만 법정에서 가족들간에 서로 싸우고 거짓말하고 상대방에 대해 비난하는 것을 보는 것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재판장에게는 너무나 괴롭고 슬픈 일입니다.

 소송까지 오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기왕 벌어진 소송에선 서로 양보해 앙금을 없애고 가족간 신뢰를 회복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안재홍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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