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북 포격 받은 날, KF-16 전투기 몰고 야간 출격한 홍관선 소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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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관선 소령이 4일 오전 비행에 앞서 KF-16 전투기에 장착된 미사일을 점검하고 있다. [정용수 기자]


“하늘에서 보이는 손톱만 한 크기의 연평도는 불타고 있었습니다. 순간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눌러 응징하고 싶었습니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이 있었던 지난달 23일 밤 충주 인근 19전투비행단에서 공군 주력기인 KF-16 전투기를 몰고 출격했던 홍관선(34·공사 47기) 소령은 당시 “본때를 보여 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고 밝혔다. 4일 본지와 단독 인터뷰에서다.

#피폭 장면 떠올라 피가 거꾸로 …

홍 소령은 북한의 추가 도발이 예상됐던 당시 야간비행을 자원했다. 편대장으로서 의무감이 있었고, 후배들에게 용기도 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륙 후 3~4분 만에 연평도에 도착했습니다. 초계비행을 하면서 그날 낮 연평도의 대피소로 뛰어가던 한 어린아이가 ‘아빠 빨리 와’라며 울부짖던 TV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습니다. 전투기 조종석 계기판 왼쪽의 ‘마스터 암(MASTER ARM·안전장치)’ 스위치와 오른손에 쥔 조종간의 빨간 버튼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마스터 암 스위치를 위로 올리고, 버튼만 누르면 미사일이 발사되는데 명령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경련이 일어나는 듯했다고 한다. 미사일을 쏘고 싶은 충동과 북한의 추가 공격이 없는 상황에서 공격할 경우 북한에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출격 직전 비행단장과 대대장이 활주로에 나와 ‘추가 도발 시 교전규칙에 의해 현장에서 종결하라’고 한 지시도 떠올랐다.

#미그기 나와서 미사일만 쏴라

“그날은 유난히도 날씨가 맑았어요. 북두칠성과 떨어지는 유성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지금 보는 저 별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전의를 불태웠지요. 당한 것 이상으로 반드시 갚아 줘야 하니까요. 그러면서 ‘미그기야 나와라’ ‘나를 맞히려고 미사일을 쏴라’고 수없이 되뇌었지만 북한의 추가 도발이 없어 복귀하라는 본부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너무 분하고 아쉬웠습니다.”

#지금 보는 저 별이 마지막일 수도

홍 소령은 북한의 황해도 해안포와 방사포 발사기지들을 사정권에 두고 초계비행을 했다. 그는 기지로 돌아와서도 북한의 공격 목표물들이 잊히지 않았다고 한다. 비행장구를 착용한 채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한참 후 아내에게 “별일 없느냐”는 휴대전화 문자가 왔지만 “괜찮다”는 짤막한 회신만 했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으로 비상이 걸린 직후 급박하게 돌아갔던 19전투비행단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고 한다. 그는 “침묵은 부대원들의 결연한 전투 의지의 표현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의 급박했던 분위기는 4일까지 계속됐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 이후 비행단에는 ‘한 방에 초전박살’이란 구호가 나붙었다. 이광수 비행단장은 오전 7시를 조금 넘긴 시간부터 부대 시찰에 나섰고, 조종사들은 조종장비를 갖추고 대기 중이다. 장병들은 철모와 방독면 가방을 착용하고 전투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충주=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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