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의 세상읽기

감세 논쟁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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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종수
논설위원

북한의 연평도 기습 포격으로 정치권에서 한창 불붙던 감세논쟁이 잠잠해졌다. 그러나 논쟁을 중단했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고, 그냥 덮어둘 일도 아니다. 실은 세금을 어떻게 거두느냐는 문제는 북한의 도발 이후 더욱 부각된 안보의식과 국가의 정체성에 관련된 근원적인 인식의 문제다. 납세의무는 병역의무와 함께 국가를 지탱하는 국민의 기본적인 의무다. 세금은 국가의 기능을 유지하게 하는 기본적인 재원일뿐더러 소득 재분배를 통한 사회 안정장치이기도 하다. 따라서 세금을 누구에게 어떻게 물리느냐는 어떤 나라를 지향하느냐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다. 즉 세제는 세금부담의 배분을 통해 한 사회가 어느 정도의 평등을 추구할 것인지를 나타내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은 나라를 굳건히 지켜야 할 필요성을 새삼 보여준 반면, 감세논쟁은 그렇게 지켜야 할 나라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느냐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감세논쟁의 시발은 이명박 정부의 감세 공약에서 비롯됐다. 세금을 깎아주면 그만큼 기업의 투자 여력과 가계의 소비 여력이 커져 결국은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논리다. 정부는 대표적인 감세론자인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을 앞세워 감세안을 밀어붙였고, 결국 종합부동산세 폐지와 법인세·소득세의 세율 인하를 관철시켰다. 야당인 민주당은 정부의 감세안에 대해 ‘부자 감세’라는 딱지를 붙여 반발했고, 이 바람에 소득세 최고세율(연간 8800만원 초과 소득자에 대해 35%)과 법인세 최고세율(과표 2억원 초과 기업에 대해 22%)의 인하가 2012년까지 2년간 유예됐다.

 이것으로 끝날 것 같았던 감세논쟁은 지난 9월 여당인 한나라당에서 재점화됐다. 정두언 최고의원이 “다음 총선·대선에서 야당의 공격포인트는 ‘부자정권의 종식’”이라며 “감세정책을 철회해 서민복지 재원으로 쓰자”고 주장한 것이다. 이후 한나라당 내의 각 정파가 제각기 감세안에 대한 입장을 내놓고, 급기야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꼽히는 박근혜 전 대표까지 가세하면서 감세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감세논쟁은 비록 잠시 잦아들긴 했지만 2012년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는 인화성을 가졌다.

 사실 감세 여부는 정치적 고려를 제외하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감세를 통해 어느 정도의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지를 따져보고, 세율 인하에 따른 세수감소 효과를 가늠해 보면 된다. 정부는 세율을 낮추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경제 성장을 통해 세수가 늘어난다며 세율 인하가 곧 감세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원윤희 조세연구원장은 최근 언론 기고를 통해 독일·미국·영국에서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세율을 꾸준히 낮췄음에도 세수는 거의 일정하거나 오히려 늘어났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1981년 62%에 달했던 소득세 최고세율을 2005년 35%까지 단계적으로 낮췄으나 세수의 절대액이 늘어난 것은 물론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소득세의 비중 역시 1981년 2%에서 2008년 4%로 늘어났다고 한다. 결국 경제논리만 보자면 세율을 낮춰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효과가 크고 세수는 줄어들지 않거나 오히려 늘어난다는 정부의 주장에 동의한다면 세율을 인하하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는 실증적 근거가 있다면 낮추지 않으면 그만이다.

 문제는 정치권에서의 세금 논의가 경제논리나 실증적 검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야당이 제기한 ‘부자 감세’ 프레임에 여당이 변변히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야당의 주장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스스로 논란을 벌이는 게 현실이다. 선거판에선 누가 뭐래도 ‘부자 감세’ 비난이 먹힌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의 절반 가까이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상황에서 최고세율 인하를 ‘부자 감세’라고 몰아치는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 아닐 수 없다. 정두언 의원처럼 아예 대놓고 “세금문제를 경제논리만으로 풀 수 없다”고 말하는 편이 차라리 솔직하게 보일 정도다.

 세금문제에 어차피 정치적인 고려를 할 수밖에 없다면 정부도 무작정 경제논리만을 고집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부자 감세’론을 피하면서 실질적으로 세율 인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소득세의 경우 안상수 대표가 제시한 대로 현재 연간 8800만원으로 돼 있는 최고세율 소득구간을 올 려 새로 최고세율 구간을 신설하고 그에 대해선 현행 최고세율을 물리는 것이다. 또 법인세의 경우도 현재 과표 2억원 초과에 적용하는 최고세율 구간을 세분해 중간세율과 최고세율 구간으로 나누면 대기업에 대한 감세논란을 피하면서 중간 규모 기업에 대한 세율 인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감세에도 정치력을 발휘할 때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