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소야대를 막아라'…DJP 중선거구제 추진 과연 성공할까

중앙일보

입력

가상 시나리오 - 전국 중선거구 이렇게 나뉜다

새 밀레니엄 시대를 여는 16대 총선이 불과 8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16대 총선은 50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DJ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과 함께 집권 후반의 정치적 향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선거이기도 하다. 지금 정치권은 자신들의 정치적 운명을 가를 16대 총선 선거구제가 어떻게 그려질지에 초미의 관심을 쏟고 있다.

그러나 끝없는 정쟁으로 인한 여야의 정치개혁 협상이 지지부진해 공동 여당의 당론대로 중선거구제로 바꿀 것인지, 야당의 당론대로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할 것인지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국회의원 정원을 2백70명으로 줄이고, 또 현재 전국구 의석의 5.5배에 이르는 지역구 의석이 비율 조정으로 크게 줄어들 것이 확실해짐에 따라 중·소선거구제 어느 쪽으로 결론나든 현재의 선거구는 대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선거구제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에서 서울정치마케팅연구소(소장 김년오)
와 “월간중앙”은 공동으로 정치권의 대변화를 몰고올 중선거구제 도입에 대비해 ‘중선거구제 선거구 시안’을 실험적으로 획정해 보았다. 인구, 면적, 행정구역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고려해 가능한 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중선거구제 시안이 되도록 했다.

서울정치마케팅연구소 김년오 소장은 30년 동안 각급 선거에 출마한 후보를 대상으로 선거 컨설팅을 해온 선거 전문가다. 이번 호에는 중선거구제 선거구 시안 전국지도와 함께 서울·부산·대구·인천·대전·광주·울산 등 7대 도시의 중선거구에 대한 해설을 싣는다. 나머지 9개도의 중선거구에 대한 해설(2부)
은 10월호에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

중선거구제는 아직 살아 있다. 지난 5월25일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중선거구제에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공동 여당의 당론으로 정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이 당론을 수정하거나 폐기한다는 공식 논의나 언급은 한번도 없었다. 다만 DJP간에 내각제 연내 개헌 유보를 합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선거구제에 관한 논의가 물밑으로 잠복했을 뿐이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정치권에서는 중선거구제를 ‘물건너간 얘기’로 아예 못박으려는 세력들이 있다. 소선거구제를 당론으로 정한 한나라당이 그렇고, 국민회의와 자민련 안에서도 중선거구제가 되면 ‘피를 볼 것’으로 여기는 호남·충청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상당수가 마찬가지 같은 심정을 내보이고 있다.

이런 마당에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중선거구제 도입을 추진할 것임을 다시 한번 천명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이제 정치개혁은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일이 되었다”고 전제하고, 그 첫번째로 “지역당 구도를 벗어나 전국정당화를 위한 선거제도가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지역분할 구도로는 이 나라의 미래가 암담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이 여기서 말한 ‘전국정당화를 위한 선거제도’는 바로 중선거구제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뜻한다. 김한길 정책기획수석이 “김대통령이 한 문장 한 문장을 직접 쓰다시피 했다”고 말했던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그렇게 언급한 것을 보면 중선거구제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 추진에 대한 김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새삼 짐작하게 된다.

김종필 총리도 내각제 연내 개헌 유보 공론화 이후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 중선거구제 도입 필요성을 다시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지난 7월25일 여야 의원, 대학총장들과 함께 골프를 치면서 국민회의 이아무개 의원에게 “선거구제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는 것. 이에 대해 이의원이 “국가 장래를 위해 돈 안드는 중선거구제가 좋다”고 대답하자 김총리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맞장구를 친 것으로 전했다.

공동 여당의 두 축인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가 이처럼 중선거구제 도입에 대한 입장이 같다는 것은 ‘중선거구제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유력한 증거다. 따라서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두 사람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한 잠복해 있는 중선거구제가 언제 다시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야당과 당내 상당수 인사들의 반대 기류를 모를 리 없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가 중선거구제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모든 정당의 전국정당화’는 단순히 명분으로 내세운 구호만은 아니다. 김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지금과 같은 지역분할 구도로는 이 나라의 미래가 암담할 뿐”이라고 했을 정도로 중요한 정치적 과제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보다 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문제다. 여야는 현재 2백99명인 국회의원을 2백70명으로 줄인다는 데 일찌감치 합의한 바 있다. 여야 모두 이 약속만큼은 서로 외면하기 힘들다. 국민들로부터 정치분야의 개혁이 가장 지지부진하다는 질타를 받고 있는 마당에 상징적인 이 약속마저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현 정치권의 공멸을 뜻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수를 2백70명으로 줄이면 순수하게 줄어드는 인원이 29명이다. 여기에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전국구)
의원의 비율을 재조정해야 한다.

13대 때 지역구와 전국구 의원 비율은 3 대 1(2백24명 대 75명)
이었다. 그러던 것이 14대 선거 때는 여야 나눠먹기에 의해 지역구 의원이 13명이나 늘어났다. 이 바람에 14대 때 지역구와 전국구 의원 비율은 3.9 대 1(2백37명 대 62명)
로 지역구 의원의 비중이 한층 높아졌다. 15대 선거 때도 지역구 의원이 16명이나 늘었다. 그 결과 현재 지역구 의원과 전국구 의원의 비율은 5.5 대 1이다. 곧 지역구 의원이 2백53명이고 전국구 의원이 46명으로 지역구 의원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과도해졌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지역구 의원 비중을 줄이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정계진출의 문이 좁은 여성계의 목소리가 큰 편이다. 비례대표 의원 비중이 줄어들다 보니 정치인 말고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정치에 참여할 기회가 적어졌고 나아가 정치의 후퇴를 가져왔다는 명분을 내세워서였다. 시민단체들이 요구하는 지역구와 전국구 의원의 비율은 각양각색이었지만 대체로 3 대 1 수준이었다.

국민회의는 선거법 개정 논의 초기에 이 요구를 수용하는 한편 정당명부제를 도입할 생각으로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 비율을 1 대 1로 하자는 주장을 했다. 그러다 자민련과 협의과정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의 비율을 2 대 1로 하자는 것으로 조정됐고 공동 여당은 5월25일 이를 당론으로 채택했던 것이다. 반면 한나라당 당론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지역구와 전국구 의원 비율 또한 현재의 5.5 대 1을 고수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 비율이 어떻게 정해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여야와 시민단체의 주장이 서로 다른 형편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 비율이 어떤 식으로든 조정이 필요하고 그 접점이 대략 3 대 1 또는 4 대 1의 수준에서 찾아질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예상하고 있다.

2백70명으로 정원을 줄이고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의원 비율을 3 대 1로 한다면 지역구 의원은 2백3명(비례대표 67명)
, 4 대 1로 할 경우 지역구 의원은 2백16명(비례대표 54명)
이 된다. 현재 지역구 의원이 2백53명이므로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3 대 1로 할 경우 50명, 4 대 1로 할 경우 36명의 지역구 의원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말만큼 쉽지 않다. 지역구를 줄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선거구 유지에 필요한 인구의 상·하한선을 각각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정치인 개개인의 정치적 생명과 직결돼 있어 상·하한선을 정하는 데 극심한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방법이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93년에 전국적으로 행정구역 통폐합 작업이 이뤄져 더 이상 기초자치단체를 줄이기는 힘든 형편이다. 그에 따른 해당 주민들의 예상되는 반발도 몹시 신경쓰이는 대목이다. 현재 시점에서 선거 전에 그 작업을 마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사실 총선을 8개월여 앞둔 지금까지 선거구제를 획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따지고 보면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사문화되다시피 했지만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24조에는 “늦어도 총선 1년 전까지 국회의장에게 선거구 획정안을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구 획정의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여당 입장에서 지역구 의원수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것이다. 그 대안이 중선거구제이고, 또 중선거구제는 ‘전국정당화’라는 뚜렷한 명분까지 있으므로 정부· 여당 입장에서는 1석2조이라 할 수 있는 제도다. 이것이 정부·여당이 중선거구제에 한사코 집착하는 1차적인 이유다.

물론 그 뒤에 도사린 공동 여당의 속셈이 없을 수 없다. 공동 여당 특히 국민회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선거구제가 ‘당에 별로 유리할 게 없는 제도’라고 강조해 왔다. 수많은 시뮬레이션의 결과를 보면 잘해야 현 수준의 본전치기 아니면 손해를 볼 수 있어 그 주장이 괜한 엄살만은 아니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야당에도 공동 여당 못지않은 위험 부담이 있다. 야당은 중선거구제가 도입되면 의석수가 현재보다 다소 늘어날 여지도 있고, 최소한 제1당을 차지하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원내 과반수 의석을 얻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야당 입장에서 3명을 뽑는 곳에 텃밭이랄 수 있는 영남권을 제외하고 복수 공천을 하기 어려운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원수가 많은 서울과 수도권이 특히 그렇다.

정부· 여당이 중선거구제를 통해 노리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면 바로 여소야대 결과의 원천봉쇄라고 볼 수 있다. 3인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 아래서는 무소속 당선자가 소선거구제 때보다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역대 무소속 당선자들은 야당보다 여당에 훨씬 많이 입당했던 전례를 보더라도 야당 입장에서는 반가울 일이 별로 없는 제도다.

과거 14, 15대 총선 결과를 되짚어 보면 여당이 여소야대 결과를 충분히 우려할 만하다. 2인 동반 당선제에서 소선거구제로 바뀐 13대 선거 결과 여소야대 결과가 빚어지자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은 90년 3당합당을 통해 인위적으로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넘는 2백12석의 거대여당 민자당을 만들었다. 그 당으로 92년 4월 14대 총선에 임했으나 결과는 1백49석을 얻는데 그쳐 1석에 불과하지만 여소야대 현상을 뒤집는 데 끝내 실패했다.

공동 여당은 16대 총선에서 그같은 결과가 재연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다 잇따른 정책 실패로 14대 총선 당시 여당인 민자당보다 국민 지지율이 더 낮은 형편이다. 이런 조건에서 공동 여당이 과반수를 넘길 가능성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야당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얻는 것을 막는 데 16대 총선의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공동 여당이 중선거구제에 한사코 매달리는 진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중선거구제 도입에 일부 공동 여당 의원들의 반대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속으로는 소선거구제를 원하면서도 당론으로 중선거구제가 결정되자 입도 벙긋하지 못하는 여당 의원들의 입장에서 DJP가 지시하면 감히 배반을 꿈꾸지는 못할 것이다. 문제는 야당의 반대다. 당론으로 소선거구제를 내세우고 있으므로 중선거구제 도입이 쉽게 타결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언제나 ‘빅딜’이 존재한다. 무엇을 주고받느냐에 따라 중선거구제 도입에 합의하는 ‘빅딜’이 성사될 여지 또한 전혀 없다고 볼 수 없다.

김년오 <서울정치마케팅연구소장>
·윤석진 <월간중앙 기자>

월간중앙(http://win.joongang.co.kr) 제 286호 1999.9.1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