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와 함께하는 NIE] ‘착한 사마리아인법’ 토론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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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 오산중학교 3학년 3반 학생들이 ‘착한 사마리아인법’에 대해 NIE 기법을 활용해 찬반 토론을 벌였다. [김경록 기자]

신문은 흔히 ‘살아 있는 교과서’라 불린다. 딱딱한 교과서 속 이론들이 신문 기사에서 생생한 사례로 풀이돼 있어서다. 17일 서울 오산중 조성백 교사는 3학년 3반 학생들과 ‘착한 사마리아인법’을 주제로 NIE 토론 수업을 했다. 조 교사는 “법 단원은 생소한 용어가 많고 내용이 어려워 수업이 지루해지기 쉽다”며 “신문 기사를 잘 활용하면 학생들의 참여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글=박형수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두 마음 토론’으로 찬반 견해 번갈아 내세워

‘착한 사마리아인법’은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고 도움을 주지 않을 경우 이를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프랑스·독일·스위스·네덜란드·이탈리아 등 유럽 14개국과 미국 30여 개 주에서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올 8월 ‘긴급한 사정으로 생명이나 신체에 위험을 당한 사람을 구조하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착한 사마리아인법이 국회에 제출돼 현재 논의 중이다.

조 교사는 토론에 앞서 이 법의 필요성에 대해 반 아이들의 생각을 물었다. 26명의 학생 중 11명이 반대했고, 11명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찬성은 고작 4명이었다. 반대 의사를 밝힌 김영규군은 “다른 사람을 도와준 사람을 칭찬하고 상을 주면 됐지, 도와주지 않았다고 벌을 주는 건 부당하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토론은 ‘두 마음 토론’ 방식으로 진행됐다. 모둠별로 다섯 명의 학생이 모여 한 명은 사회자가 되고 나머지는 두 명씩 짝을 지어 찬성과 반대 측 의견을 주장하게 한다. 토론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찬반 팀을 바꿔 토론해야 한다. 조 교사는 “개인적인 견해와 상관없이 찬성과 반대 주장을 모두 개진해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논리 정연하게 정리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문 기사 인용하며 반박하기도

반대 측 주장을 맡은 도준혁군은 “꼭 구해줘야 할 만큼 위급한 상황인지 여부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느냐”며 “상황 판단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어 법으로 규정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민영군은 ‘아기를 구한 여고생’에 대한 신문 기사를 예로 들며 반박했다. 주택의 2층 창문에 매달린 아이를 본 여고생 김한슬양이 1.5m의 철조망을 넘어가 떨어지는 아이를 구조한 내용을 다룬 기사였다. 박군은 “김양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이웃을 돕겠다는 마음이 있으면 상황을 머리로 판단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이는 법”이라며 “착하게 살겠다는 의지를 심어주고 실천을 강조하기 위해 꼭 필요한 법”이라고 말했다.

사회자가 찬반 역할을 바꾸게 하자 곧바로 주장하는 내용이 달라졌다. 박군은 “다른 사람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위험에 빠지게 될 수 있다”고 반대 의견을 펼쳤다. 그는 “일본에서 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다 죽은 한국 유학생 이수현씨 사례처럼 남을 구하려면 살신성인의 정신을 가져야 하는데 이것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토론 거치면 합리적으로 판단 내릴 수 있게 돼

조 교사는 “토론 진행 과정에서 나온 논거들을 종합해 모둠별로 최종 의사를 결정해 발표해보자”고 제안했다. 발표는 토론을 이끈 사회자가 맡았다. 총 다섯 모둠 중 네 모둠이 착한 사마리아인법에 대해 반대한다고 발표했다. 김효석군은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어야 하는데 착한 사마리아인법은 지나치게 적극적인 규제”라며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찬성 의사를 밝힌 정호용군은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깨는 행위”라며 “사회 공동체 유지를 위해 착한 사마리아인법을 제정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모둠 발표가 끝나고 착한 사마리아인법 제정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다시 물었다. 4명에 불과하던 찬성측 학생이 15명으로 늘었다. 조 교사는 “이렇게 생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토론의 의미”라고 강조했다. “토론을 하게 되면 막연하게 좋고 나쁘고를 표시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가치 판단을 내릴 수 있어요. 특히 신문 기사에 자주 거론되는 이슈에 대해 자주 토론하면 시사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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