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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디에게 들키고 카메라에 찍히고 … 완전 범죄는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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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최근 한국프로골프투어(KGT)에서 두 명의 선수가 동시 실격되어 상벌위원회에 올라가 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세 명의 선수가 1라운드에서 한 조로 치던 중 한 선수가 기권을 했다. 3명 한 조 경기에서 A선수의 마커(스코어를 기록하는 사람)는 B선수, B의 마커는 C선수, C의 마커는 A선수가 된다. 그러나 두 선수가 한 조일 때는 서로 마커가 된다. 상부상조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A와 B는 스타급이 아니어서 따라다닌 TV 카메라는 물론, 갤러리도 없었다. 두 선수는 서로 은밀히 눈빛을 교환했다.

타이거 우즈는 언제나 카메라의 주목을 받기 때문에 속임수를 쓸 수가 없다. 우즈가 2004년 마스터즈에서 잃어버린 공을 찾아 수풀을 뒤지는 모습. [중앙포토]

완전범죄가 가능할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꼬리가 밟혔다. 방송사와 인터넷에 실시간 스코어를 제공하는 업체에서 낸 기록과 선수들이 낸 스코어카드가 다른 것이 발단이 됐다. 선수들은 자신들이 낸 스코어카드가 맞다고 주장했다. KGT는 선수들의 말을 믿고 실시간 스코어 업체에 “타수를 제대로 세라”고 불만을 표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스코어를 기입한 사람들이 “똑바로 셌다”고 반발했다.

평소 같았다면 선수들의 주장이 먹혔을 것이다. 평소 실시간 스코어 업체는 골프를 잘 모르는 대학생 등을 아르바이트 기록요원으로 썼다. 선수가 그렇다고 하면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그 대회는 외진 곳에서 열려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골프장의 캐디를 고용했다. 캐디들은 스코어 세는 일이 직업이다. 캐디는 선수들이 벙커에 빠진 상황 등 정확한 상황을 제시하며 자신들이 낸 스코어가 맞는다고 주장했다.

비제이 싱


A선수와 B선수는 “캐디가 틀렸으며 우리가 제대로 셌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KGT의 추궁이 계속되자 며칠이 지나 A선수가 고백을 했다. 그러자 B선수도 “잘못 센 것 같기도 하다”고 물러섰다고 한다. 두 선수는 짜고 고의적으로 스코어카드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혐의가 사실로 밝혀진다면 무거운 처벌을 피할 수 없다. 프로 자격을 빼앗길지도 모른다. KGT에 의하면 두 선수는 각각 3타와 4타를 줄여 1라운드에서 똑같이 73타로 썼다. KGT 관계자는 “1라운드에서 1오버파 정도면 컷 통과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했다.

요즘 아마추어는 남이 안 볼 때 슬쩍 공을 옮겨 놓기도 하지만 프로는 규칙을 잘 지킬 거라는 인식이 있다. 프로들은 “아마추어나 규칙을 어긴다”고 한다. 그러나 골프 초창기 사람들의 생각은 반대였다. 프로와 아마추어가 처음으로 벽을 헐고 함께 경기한 1861년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규칙을 위반하는지 감시하고 스코어를 체크하는 마커는 프로들만 따라다녔다. 주최 측은 젠틀맨인 아마추어는 스코어를 속이지 않을 거라고 믿었고 프로는 타수를 속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아마추어 골퍼들에게는 명예가 가장 중요했고 프로들에겐 돈이 가장 큰 가치였다. 아마추어들이 속임수를 쓰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내기 골프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프로들은 실제로 많은 속임수를 썼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유명 선수도 속임수에 연루된 경우가 종종 있다. 세계 랭킹 1위를 했던 비제이 싱은 1985년 아시안 투어에서 스코어카드를 조작했다는 이유로 2년간 자격 정지됐다. 싱은 거물이 된 후 당시 사건은 억울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안 투어는 이를 수정할 의사가 없다고 한다. 속임수 경력은 싱의 경력에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아 있다. 콜린 몽고메리도 2005년 인도네시아 오픈에서 비 때문에 경기가 중단됐다 재개됐을 때 원래 있던 자리보다 더 좋은 자리에 공을 놓고 쳤다. 그도 역시 이 사건을 부인했는데 TV 카메라가 증거가 될 만한 장면을 촬영했다. 투어는 간판 스타인 그를 실격시키지 않았다. 몽고메리는 상금을 기부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스타급 선수는 속임수를 썼을 경우 발각될 위험이 크다. 관심이 집중된 선수에게는 TV 카메라와 갤러리·기자 등 수많은 눈이 따라다닌다. 고의적인 속임수는 아니었지만 사소한 규칙 위반이 몇 차례 드러난 미셸 위도 억울한 측면이 있다. 비인기 선수였다면 충분히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는데 수백만 개의 눈이 그를 쫓아다니기 때문에 사소한 규칙 위반도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일반 선수들은 아니다. OB가 나면 볼을 몰래 떨어뜨려 놓는 이른바 ‘알까기’ 등을 할 여건이 된다. 속임수도 동료와 캐디가 묵인한다면 완전범죄가 될 수 있다. 정직한 게임이라는 것을 강조해야 하는 투어는 완전한 증거가 없으면 조용히 덮고 넘어가는 쪽을 택한다.

그래서 발각되는 일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골프를 ‘명예의 스포츠’ ‘정직의 게임’이라고 유달리 강조하는 이유는 ‘사실은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제외하곤 아무도 보지 못한 공의 미세한 움직임을 자진 신고하고 스스로 벌타를 받는 프로골퍼의 미담이 가끔 나온다. 그러나 “누가 알까기를 하고 타수를 속였다”는 이야기도 투어에서 종종 들린다.

LPGA 투어에서 뛰다 은퇴한 한 한국 선수는 “그린에서 홀 쪽으로 조금씩 밀어 넣기는 기본이고 알까기, 러프에서 볼을 옮겨 놓기 등 속임수를 쓰지 않은 선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는 과장이 없지 않다. 속임수를 쓰는 선수는 정상급 선수가 되기 어렵다. 어니 엘스는 “아무리 뻔뻔스러워도 마음속에 죄책감을 가지고 우승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카메라와 항상 함께 다니는 타이거 우즈는 적어도 코스 안에서는 누군가를 속일 수 있는 환경이 안 된다.
그러나 더러 속임수에 대한 얘기도 들린다. LPGA 투어의 정상급 미국 선수인 C는 캐디와 크게 싸운 후 결별했는데 그 이유는 C가 몰래 ‘알까기’를 한 사실을 안 캐디가 “양심선언을 하라. 부정직한 선수와 함께할 수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C는 슬럼프를 겪다가 최근 그 캐디와 다시 합치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C는 “과거 우리는 성격이 맞지 않았는데 이제 어른이 됐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한국 선수들도 LPGA 투어에서 문제가 된 경우가 더러 있다. 한국 선수들이 LPGA 투어에 진출한 초창기엔 코스 밖으로 나간 공을 아버지가 던져 줘서 말썽이 일기도 했다. 부모들은 자식이 샷을 할 때 낙구 지점에 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시 공이 러프에 들어갔을 경우 찾아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주위에 아무도 없다면 깊은 러프 속으로 들어가거나 코스 밖으로 나간 공을 던져주고 싶은 유혹을 느낄 만도 하다. 그래서 몇몇 선수의 아버지는 코스 출입이 금지됐다.

지난 8월 열린 캐나다 여자오픈에서는 한국 선수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정일미와 안시현은 경기가 끝난 후 공이 바뀐 것을 알게 되어 신고하고 자진 실격했다. 하지만 이를 문제 삼은 한 캐디는 “두 선수가 경기 중 공이 바뀐 것을 알면서도 벌타를 더하지 않은 스코어카드에 사인했다가 다른 사람의 지적을 받고 나서야 사실을 털어놨다”고 주장했다. LPGA 투어는 진상을 조사한 후 두 선수가 스코어카드에 사인한 후 공이 바뀐 사실을 안 것으로 결론지었다.

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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