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가형 노후 준비하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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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호 30면

몇 년 후 은퇴를 앞둔 50대 전후의 베이비 부머들이 생각하는 노후생활상은 그다지 밝지 못하다. 대도시 거주 2000가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봤더니, 우리 국민들은 은퇴 후 노후자금으로 월 213만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준비된 노후자금은 137만원에 불과하다. 또한 개인연금에 가입한 가구는 22.3%밖에 안 된다. 이렇다 보니 안정된 노후생활을 자신과 관계없는 강 건너 불처럼 체념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중소기업을 그만둔 김모(56)씨는 창업과 취직 모두 여의치 않아 고민에 쌓여 있다. 눈높이를 낮추어도 재취업은 거의 불가능한 것 같고, 체인형 음식점 운영에도 관심이 있지만 자영업 전망 자체가 불투명하다. 김씨의 경우 하나뿐인 아들이 대학 졸업반이어서 학비 부담은 크지 않다. 그가 가진 순자산은 5억원(아파트 3억8000만원+금융자산 1억2000만원)으로 평가됐다.
김씨의 재무상태를 분석해보면 자산 규모는 비슷한 연령대에 비해 작지 않은 편이다. 문제는 부동산 비중이 너무 크고 연금 가입금액이 적어 노후가 불안하다는 점이다. 외국에선 오래전부터 퇴직연금·국민연금·개인연금 제도가 활성화돼 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연금 가입률이 낮고, 퇴직연금은 이제야 시작돼 개개인의 노후생활을 뒷받침하기엔 턱없이 열악하다.

김씨처럼 은퇴를 갑작스레 맞이하는 50~60대 베이비 부머들은 대부분 노후생활 스타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큰 어려움을 겪는다. 미국·일본 같은 고령화 사회에선 은퇴 후 생활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척돼 있다. 그중에서 우리에게 간단하게 시사점을 주는 모형도 많다. 그 가운데 2002년 8월 미국에서 발표된 네 가지 은퇴생활 스타일과 만족도는 참고할 만하다. 피터 하트 연구소은퇴의 새 얼굴(The New Face of Retirement)이란 연구 결과를 보노라면 시골이나 휴양지에서 은퇴생활을 선망하던 미국인들의 의식에도 변화가 발생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실태 조사는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첫째 나이를 잊은 탐험가형, 둘째 노후를 평안하게 즐기는 전통적인 은퇴생활형, 셋째 매일 안절부절못하면서 살아가는 근심형, 넷째 질병에 시달리는 환자형으로 구분했다. 그 결과 탐험가형 또는 기업가형은 전체 은퇴자의 27%를 차지했다. 그들은 은퇴생활을 제2의 황금기로 생각하면서 창업과 사회활동, 자원봉사를 마다하지 않는다. 순자산 규모는 평균 5억원 정도이며 매년 연금으로 7000만원을 받는다. 일찍부터 은퇴를 계획하고 준비한 결과로 분석됐다. 전통적인 은퇴생활형은 휴양지에서 살면서 여행과 취미생활을 즐기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전체의 19%가 그에 속하며 사회활동이나 자기계발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근심형은 은퇴자의 22%를 차지하는데 재산이나 연금 소득이 비교적 적은 편이어서 현재의 생활에 그다지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연금제도가 잘 발달된 덕에 이들의 연금 소득은 연 4000만원, 순자산 규모는 2억5000만원쯤 됐다. 전체의 32%쯤 되는 환자형들은 자산 규모도 작고 미래에 대한 흥미나 생활 만족도 역시 낮았다.

우리나라 베이비 부머들은 은퇴 후 네 가지 유형 중 어느 쪽에 속하게 될까. 국가 차원에선 탐험가형이 많고, 나머지 유형이 적을수록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 사회 분위기로는 근심형이 과반수를 차지할까 봐 걱정스럽다. 행복학에서 늘 강조하는 얘기가 있다. ‘행복해지려면 행복할 수 있는 일이나 방법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베이비 부머들은 행복한 노후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은퇴를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좀 더 많은 지식을 쌓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멋있는 탐험가형 은퇴생활로 또 다른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



우재룡 연세대 경영학박사(투자론). 한국펀드평가사장, 동양종합금융증권 자산관리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행복한 은퇴설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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