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재무구조개선약정 다시 수면 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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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현대건설 본입찰이 마무리되면서 외환은행 등 채권단과 현대그룹 간의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9월 법원은 약정 체결을 거부한 기업을 채권단이 공동제재하는 것은 위법이라며 현대그룹이 낸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채권단은 당시 이의신청을 하려 했으나 현대건설 인수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보류했다.

 채권단은 본입찰이 끝난 만큼 현대그룹과의 약정 체결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익명을 원한 채권단 관계자는 17일 “법원의 결정은 공동제재에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일 뿐 약정 체결 자체가 불법이라는 것은 아니다”며 “약정을 체결한 다른 기업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약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가처분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을 하기 위한 협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금융감독당국도 대기업의 부실을 예방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재무구조개선 약정의 틀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법원이 채권단의 공동제재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부분은 개선키로 했다.

 현대그룹의 대응도 변수다. 애초 현대그룹이 약정 체결에 반발한 것은 약정을 맺으면 신규 사업을 벌일 수 없고, 현대건설 인수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대건설을 인수할 우선협상대상자가 된 뒤엔 상황이 달라진 셈이다. 익명을 원한 현대그룹 관계자는 “당장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기 어렵다”며 “채권단의 움직임을 지켜본 이후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재무구조개선약정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채권단이 약정 체결을 요구한 것은 현대그룹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현대상선이 경기 침체의 여파로 지난해 565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상선은 올해 1~3분기 6조170억원의 누적 매출과 4653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올해 실적이 좋아졌는데 지난해 실적을 근거로 약정을 체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편에선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고도 과도한 차입금 때문에 위험에 빠지는 이른바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재무구조개선약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대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현대건설 인수 등에 대비해 차입금을 꾸준히 늘려왔다. 증권업계에선 현재 추진하고 있는 유상증자와 자산매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원배·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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