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가 삼성전자 주가 발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0면

특정 종목의 주가 변동에 따라 일정한 수익을 주는 주가연계증권(ELS)이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면서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절반 이상의 상품이 삼성전자와 연계돼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 주가를 왜곡시키고, 증시 전반의 행보를 제약하고 있는 것이다. 또 삼성전자 주가의 변동폭이 작아지면서 관련 ELS가 판매 당시에 내세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위험도 커지고 있다.

◆덫에 걸린 삼성전자=ELS는 투자자금의 70% 이상을 채권에, 20% 안팎을 현물 주식에, 나머지 10% 가량을 옵션에 투자한다. 채권 투자로 원금 손실 가능성을 줄여놓은 뒤 옵션 거래로 목표한 수익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때 현물 주식 투자는 위험 분산(헤지)수단으로 사용된다. 옵션 투자가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일반적인 매매와 반대로 주가가 상승하려고 하면 팔고, 내리려고 하면 사는 것이다.

그런데 삼성전자 관련 ELS가 워낙 많이 팔리다 보니 시장의 흐름과 반대되는 매매의 규모가 커지고, 이 여파로 삼성전자 주가가 덜 오르고 덜 내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2분기부터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한 ELS는 지난달까지 약 7조원어치가 판매됐다. 이 중 삼성전자를 기초 자산으로 하는 것은 약 4조원에 이르고, 4000억~6000억원이 삼성전자에 투자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최근 5년간 삼성전자의 주가 흐름을 비교하면 올해의 변동폭이 가장 작다. 연초 주가를 100으로 하고 5월10일까지의 주가 흐름을 살펴보면 2001년,2002년,2003년에는 최고.최저 가격의 차이가 40~45포인트에 달했다. 그러나 올해는 20포인트에 불과하다. 우리투자증권의 황재훈 연구원은 "삼성전자 주가의 변동성이 줄어든 데는 ELS 매매에 따른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요즘처럼 증시가 무기력증에 빠져있어 상승세를 이끌 주도주가 절실한데, 삼성전자의 발목이 잡히면서 시장 전체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ELS 투자 주의=지난해 삼성전자가 아닌 종목과 연계된 ELS의 비중(판매 금액 기준)은 3%에 불과했으나 올 1분기에는 29% 늘었다. 이는 삼성전자의 변동성이 줄어들면서 삼성전자와 연계해서는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아졌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 삼성전자 주식도 주로 포스코.현대차.삼성SDI 등 주요 대형주에 집중되기 때문에 해당 종목 주가와 관련 ELS 수익률에 모두 악영향을 주는 현상이 나타날 개연성이 크다. 또 이들 종목의 시가총액은 삼성전자의 20~30% 수준이어서 충격이 더 클 수 있다.

우재룡 한국펀드평가 사장은 "국내 시장의 크기나 질에 비해 ELS가 지나치게 많이 팔렸다"며 "ELS 상품의 구조가 매우 복잡한데 판매 창구에서 투자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원금보장 ELS가 많지만 파생상품 거래에 따른 위험을 감안하면 주식 투자 이상의 고위험을 지고 채권 수익률보다도 못한 수익을 얻는 셈"이라며 "상품의 위험성을 충분히 이해한 뒤 가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