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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규제 망상 버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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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하나:수도권 내 공장 신.증설을 놓고 중앙정부와 경기도가 맞붙었다. 3M 화성공장 착공 문제를 놓고서다.

둘:정부는 충청권이 아닌 지역에 200여 개의 수도권 공공기관을 분산 이전키로 했다.

셋:정부는 수도권에 판교에 버금가는 신도시를 몇 개 더 건설하기로 발표했다.

넷:정부는 지방에 기업도시와 혁신도시를 건설하기로 했다.

다섯: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과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는 대신 수도권의 규제는 풀어 준다.

최근 기사들이다. 수도권에 외국투자기업과 대기업 첨단 업종의 공장 신설을 허용한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지방에 기업도시와 혁신도시를 만든다? 서로 부딪치는 정책이다. 기업들이 수도권에도 투자하고 동시에 지방에도 투자할 여력이 있다고 보는 것인가. 정말로 한심한 발상이다. 이는 수도권도 죽고 지방도 죽자는 논리다.

행정도시의 충청권 이전과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에 따른 수도권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수도권 규제를 완화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여당은 이미 수도권 서울공항 개발 등의 졸속 정책을 내놓았다 국민의 호된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이런 정책 또한 기존의 수도권 규제 정책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것이다.

행정수도와 공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하는 마당에 수도권에 몇 개의 신도시를 더 지어 추가로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겠다는 발상은 무엇인가. 상충하는 정책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제 수도권 문제는 정책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로 변질됐다. 국민을 우습게 생각하지 않고는 이렇게 할 수 없다.

왜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일까. 이는 국토 이용의 종합적 계획을 철저히 무시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국토의 커다란 밑그림을 그린 국토종합계획이 정치논리에 의해 휘둘림을 당했기 때문이다. 뚜렷한 철학과 원칙이 없으므로 국토에 대한 올바른 대책을 세울 수 없는 것이다.

현행 수도권 정책이 표류하면서 갈등만 초래하게 된 것은 '수도권을 묶으면 다른 지방이 발전한다'는 그릇된 발상도 문제였지만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규제의 방법과 내용이 주먹구구식이라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 경제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수도권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입각한 첨단.바이오.지식산업을 중심으로 고밀도 개발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값비싼 토지 자원의 효율적 이용은 물론 수도권이 경쟁력 있는 경제권으로 발전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당위성에 매달려 수도권 규제를 강화하는 사이 외국자본은 등을 돌리고 국가경쟁력은 계속 추락하고 있다. 국가경쟁력을 잃고 경제성장이 지체된 상황에서의 국가균형은 하향 평준화일 뿐이다. 그래서 수도권 정책 관련법들도 국가경쟁력이라는 잣대로 재조명하고 정비해야 한다.

그렇다고 공장 신.증설 허용이 수도권의 마구잡이 개발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다시 수도권 관리계획의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 서울 집중형 구조를 분산형 구조로 바꾸면서 산업 클러스터를 만들어 가야 한다. 아울러 생태 수도권을 위한 녹지벨트를 만드는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

세계가 수도권의 규제를 과감하게 풀면서 외자 유치를 선점하려 다투는 마당에 풍부한 고급 인력과 정보 인프라 등 혁신도시의 입지 조건을 갖춘 우리의 수도권에 외자와 국내자본이 제때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는 수도권 규제 망상에서 벗어날 때다. 정치논리에서도 빨리 탈피해야 한다. 수도권을 억제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경쟁력의 견인차로 활용하겠다는 인식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

원제무 한양대 교수.도시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