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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살길은 통신·방송 융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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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인터넷이 대중화된 지 꼭 10년이다. 미국의 넷스케이프란 회사가 정보검색 기구인 '네비게이터'를 무료로 공급하면서 인터넷이 전 세계로 퍼졌다. 우리나라가 제일 빨리 받아들인 편이다.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안철수연구소가 그때 만들어졌다. 미국의 야후 탄생도 그맘때다. 넷스케이프가 주식시장에서 상한가를 친 것 같이 지금은 구글이란 회사가 잘나간다.

그 사이에 우리는 CDMA란 통신방식을 상업화해 세계 유수의 휴대전화 생산국이 됐다. 자동차.철강.섬유 등 기존 굴뚝산업을 능가하는 제조업의 혁명이 휴대전화에서 일어났다.

서비스 분야의 발전은 더 놀랍다. 인터넷 포털 업체들이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는가 하면 주식.상품 등의 인터넷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가상의 물건을 진짜 돈을 내고 사는 '도토리'를 모르면 늙은이 취급받는다. 자신의 홈페이지를 공개해 여러 인연을 맺는 싸이질을 못해도, 내 일기장을 보여주듯 자신의 생활과 생각을 툭 털어놓는 블로그를 못해도 답답한 세상이다.

일부 사회학자는 요즘을 동시체험 시대(Parallel Reality)라고 부른다. 여의도에서 폭죽이 터지는 걸 휴대전화로 찍어 부산 친구에게 보내 같이 느끼는 것이다. 지금 중국에서 번지고 있는 반일 운동도 같은 맥락에서 보면 쉽게 이해된다.

지난 10년 새 세계적으로 30억 명의 인구가 자유시장경제로 들어왔다. 중국.인도.옛소련 등이 합류한 것이다. 5년 전에는 이른바 밀레니엄 버그(Y2K)로 온 세계가 난리를 피웠다. 그때 쏟아 부은 돈은 결국 인도를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만들었다. 미국에서 해결사 역할을 했던 인도 기술자들이 그 기술과 인적 네트워크를 몽땅 인도로 가져간 것이다.

이런 기술혁명의 물줄기를 우리는 용케 잡아채 IT 일등국가가 됐다. 케이블TV.스카이 라이프.위성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 등의 수많은 채널과 초고속통신망 ADSL, 와이브로(휴대 인터넷), 유선 케이블망 등 이렇게 다양하게 IT화한 나라가 어디 있는가.

그래서 정부는 이런 잠재력을 미래 경제성장 동력으로 삼자며 'IT 839'(첨단 서비스 8개 분야+인프라 3개 분야+ 기술개발 9개 분야)를 지난해에 들고 나왔다. 올해는 그 성과를 바탕으로 유비쿼터스 사회를 만들어 가겠다고 한다.

그런데 큰 문제가 생겼다. 대통령도 침이 마르게 칭찬했던 IT 839의 성과가 신통치 않고 뭔가 나올 기미도 안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IT 839 덕에 과연 일자리가 얼마나 늘었는가, 지역 균형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가, 중소.벤처기업을 얼마나 도와줬는가, 정보통신 부품산업은 제대로 키우고 있는가?

또 콘텐트 산업은 어떤가. 통신업계의 양대 산맥인 KT와 SK텔레콤이 많은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그들도 뾰족한 수가 없는 모양이다. 수년째 과당경쟁으로 벌금만 내고 있는 실정이다.

'포스트 839'는 무엇인가. 지금 통신시장의 화두다. 전체가 꽉 막혀 있다. 시장이 완전히 포화된 분야도 있고 규제에 막혀 한발짝도 못 나가는 분야도 있다. 수출 환경도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IT가 다시 사는 길은 딱 하나다. 통신과 방송을 한시바삐 합치는 것이다. 방송도 경제성장에 기여할 때가 왔다. 그렇게 되면 상상치 못할 폭발력이 나올 것이다. 지금은 3층으로 돼 있는 8차선 고속도로(통신망)에서 모든 차(서비스)가 각자에게 주어진 1개 차로만 달리는 꼴이다. IT 일류 국가를 향한 정치적 결단이 절실한 시점이다.

곽재원 경제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