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중앙서울마라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44살의 완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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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에 끈(사진)을 묶어 서로를 지탱한 두 남자가 잠실종합운동장에 들어섰다. “이제 한 바퀴 남았어요.” 가이드 러너(장애인을 인도하는 동행 주자) 김종남(36)씨의 말에 옆에서 숨을 헐떡이던 이철성(44)씨는 이를 악물었다. 유난히 길었던 트랙을 돌아 결승 지점에 들어선 순간, 김씨가 나지막이 외쳤다. “2시간59분21초래요. 우리가 드디어 해냈어요!” 이씨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생애 첫 서브 스리(Sub Three·마라톤에서 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완주)의 꿈이 마침내 이뤄진 순간이었다.

 7일 중앙서울마라톤에 참가한 이철성씨는 복합장애인이다. 태어날 때부터 시각과 청각 장애를 지니고 있었다. 사방이 어둡고 고요하기만 했던 그가 삶의 희망을 찾기 시작한 것은 28세 무렵 달리기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아무런 근심 없이 바람을 가르며 질주할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열정이 솟아올랐다. 소질도 있었다. 매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나가 육상 단거리 부문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하지만 마흔 살을 넘기면서 기록이 점점 늦어졌다.

 고민하던 그에게 손을 내민 곳이 있었다. 아마추어 마라토너 모임인 ‘해피레그(Happy Leg)’였다. 중앙서울마라톤에 참가하는 시각 장애인들의 레이스를 돕기 위해 2007년 만들어진 자선 마라톤 클럽이다.

 장거리로 전향한 뒤에는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갑자기 늘어난 훈련량도 문제였지만 3시간 넘게 가이드 러너와 페이스를 맞추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았다. 올해 초부터 중앙서울마라톤에 대비한 훈련을 시작했지만 서로 몸을 묶고 달리는 데 익숙하지 않아 넘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눈물겨운 훈련 덕분에 그는 이날 개인 종전 기록(3시간17분)을 18분이나 단축할 수 있었다. 이씨를 포함해 올해 중앙서울마라톤에는 16명의 시각장애인이 해피 레그와 함께 달리며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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