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이상묵 교수 “장애인 위한 기술 개발이 진짜 융합과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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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어깨 아래가 마비돼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으면서도 장애인에게 절실한 ‘따뜻한 기술’개발을 지휘하고 있는 ‘한국의 스티븐 호킹’ 이상묵 교수. [김태성 기자]

“과학기술의 융합이란 결국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특히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는 계기가 돼야겠죠.”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상묵(48)교수가 천천히 말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원장 최양희)이 11월 8~9일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여는 ‘G20 국제융합기술심포지엄’에서 기조연설을 맡았다. ‘더 나은 삶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가 공식 후원한다. 국내외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여 ‘융합’이란 단어가 지향할 점을 논의한다.

 이 교수는 중도 장애인이다. 4년 3개월 전 미국에서 연구조사 도중 교통사고를 당해 어깨 아래의 감각을 잃었다. 몸은 휠체어에 고정돼 있지만 교수로서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수 마우스와 음성인식 프로그램 덕분이다. 영어로 말을 하면 모니터에 글자가 찍힌다. 왼쪽 턱 옆에 부착된 빨간 플라스틱 통 빨대에 입김을 불면 커서가 움직인다.

 “덕분에, e-메일이나 문자를 보내는 데 별 문제가 없습니다. 사이버 세상에선 제가 장애인이란 걸 알 수 없지요. 컴 퓨터와 인터넷, 휴대전화는 장애인에게 엄청난 선물입니다. 문제는 한글 음성인식 프로그램 수준이 형편없다는 것입니다. 한때 너도나도 개발에 나섰다가 돈이 안 되자 다들 철수했기 때문입니다. 융합연구 주제로 탄소나노튜브나 지놈도 필요하지만, 장애인에게 절실한 이런 기술들도 개발돼야 합니다. 그게 ‘따뜻한 기술’입니다.”

 그는 지금 이 ‘따뜻한 기술’ 개발을 지휘하고 있다. 2년 전 한 신문에 쓴 칼럼이 계기가 돼 지식경제부로부터 연구비 100억 원을 지원받게 됐다. 지난 7월부터 그 절반을 한글 음성인식 프로그램, 로보틱스 등의 개발에 투입했다. 이름하여 ‘QoLT(Quality of Life Technology)’ 프로젝트다. 나머지는 장애인 교육, 그것도 이공계 학문을 가르치는 데 쓸 생각이다.

 “장애인이 겪는 고통은 세 가지입니다. 우선 경제적인 것, 둘째 사회적응이 어렵다는 것, 셋째 가족간 갈등이죠. 저는 과학기술이 장애인 교육에 도움을 주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주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통해 사회에 적응하게 되면 경제 문제가 해결되고, 가족간 갈등도 줄어들죠. 현재 서울대에 다니는 장애인 학생이 60명 정도 되는데 80%가 문과입니다. 우리가 IT 강국을 자부하는데 왜 이공계에서 공부하겠다는 장애인이 적을까요. 저는 이 보이지않는 장벽을 극복하고 싶습니다.”

 이 교수는 “개별 학문의 벽에 갇히지 않고 범 학문적으로 사람의 삶에 활용하는 응용력이 바로 융합”이라고 말했다. 테크놀로지의 수준은 높지 않더라도 실제로 사람들이 사용해 큰 효과를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다른 학문에 대한 호기심과 지식,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각자 낱개로 살아왔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았죠. 덕분에 우리는 사상 최초로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의식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뿌리를 내릴 차례입니다. 장애인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에 비하면 우리 수준은 많이 떨어지죠. 하지만, 그건 우리가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빨리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물질적 성장을 정신이 못 따라가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의식적으로 고쳐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융합의 기본 정신이겠죠.”

글=정형모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G20 국제융합기술심포지엄=장애인을 위한 삶의 질 향상, 일반 저소득층을 위한 IT 융합과 책의 미래, 건강한 삶의 나노융합, 기술을 통한 인간의 가치 실현, 바이오 융합 기술을 통한 생명과학의 혁신 등 5개 섹션이 이틀간 진행되는 행사다. 세계적 IT기업인 알카텔 루센트의 바실리 라도아카 부사장과 이상묵 교수가 기조연설을 하며 마이크로 소프트의 기술임원 마이클 대처, 미 버클리대 제이 그로브스 교수, 일본 도쿄대 이쿠타 코지 교수, KT 권순철 상무,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를 비롯한 국내외 석학·전문가들이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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