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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검찰수사 정도 걷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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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청원경찰법 입법로비 의혹과 관련된 서울북부지검의 ‘국회의원 후원회’ 전격 압수수색에 정치권이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검찰총장의 사퇴와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여당도 과잉 압수수색과 피의사실 공표를 문제 삼고 있다. 무엇보다 ‘소소한 후원금’ 문제를 갖고 동시다발적 압수수색을 당해 국회가 무시당했다는 반감이 작용한 듯하다. 하지만 정치자금법은 음습한 돈거래를 막기 위해 국회의원 자신들이 입법한 것이다. 게다가 국회의원도 법 앞에선 평등하다. 지금은 정국전환이나 표적수사라는 주장으로 본질을 호도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입법취지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검찰도 전격적인 압수수색까지 한 만큼 제대로 수사를 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그럼에도 현재 한화·태광그룹 등 재계와 정치권을 향해 동시다발로 진행되는 검찰 수사를 국민이 석연치 않게 바라보는 이유가 있다. 바로 공평성에서다. 우선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한 부실 수사와 비교된다. 총리실에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파기하기 전 건네졌다는 ‘대포폰’ 증거가 나왔음에도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재수사는 없다”며 요지부동이다. 청와대 개입이 의심되는 수사 결과에도 “기소 요건과 관계없다”고 덮어버리니 검찰의 이중성 논란이 이는 것이다.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수사도 마찬가지다. 일찍부터 혐의가 불거졌지만, 기업과 정치권에 대한 수사가 재개된 최근에야 비로소 수사에 착수했다. 천씨는 피의자 신분인데도 아직까지 체포영장 발부도, 구체적인 소환계획도 없다. 이러니 구색 맞추기 수사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일만 벌여놓고 지지부진 끄는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벌써 ‘검찰권 과잉’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을 정도다. 한화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는 두 달이 되도록 이렇다 할 결과가 없다. 집권 후반기 재벌 길들이기용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으면서 전격 압수수색까지 벌였는데도 말이다. 그러는 사이 그룹의 대외신인도만 추락하고 있다고 한다. 태광그룹도 비슷하다. 구체적인 제보를 바탕으로 대대적 압수수색까지 벌였지만 한 명도 사법처리하지 못했다. 신한금융그룹에 대한 비자금 및 횡령 의혹 수사도 마찬가지다. 은행 측이 두 달 전에 고발하면서 상세한 자료를 제출했고, 부당대출을 받았다는 기업 대표를 다른 혐의로 구속했음에도 신상훈 사장은 아직도 소환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무분별한 기업수사와 별건 수사를 경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진 게 없지 않은가. 이러니 다시 ‘검찰공화국’이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검찰은 종종 외과의사에 비유된다. 곪은 환부를 도려낸다는 점에서다. 훌륭한 외과의사는 메스를 들기 전에 X선을 찍고, 혈청과 조직을 검사해 환부를 정확히 진단한다. 일단 메스를 들면 신속하게 도려내고 봉합한다. “여기가 아니네”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바로 의료사고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철저한 내사를 거쳐 신중하고 엄정한 수사로 범죄를 짚어내 사회적 환부를 도려낸다. 수사가 방향을 못 잡고 질질 끌면 마치 외과의사가 환자를 수술대에 올려놓고 여기가 문제인가, 저기가 문제인가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검찰에 대한 불신은 결과적으로 국민의 불행이다. 엄정한 검찰권 행사야말로 힘없는 서민의 보호막이다. 따라서 검찰은 항상 스스로 공복의 자세를 되돌아봐야 한다. 더욱이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논란까지 빚은 터 아닌가. 그런 점에서 검찰 수사가 혹여라도 스스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비춰지게 해서는 검찰에 득 될 게 아무것도 없다. 특히 중수부나 특수부가 나선 수사라면 사회에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시대의 병인(病因)을 짚어내고, 사회의 암(癌)으로 전이(轉移)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다짐이다. 이런 의식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실력이 없이 휘두르는 칼은 자신과 국민을 다치게 한다. 그런 점에서 검찰은 스스로 균형을 갖추고 정도(正道)를 걷고 있는지 자문(自問)할 필요가 있다. 바로 지금이 그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