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4룡’ 중 최장타자, 4년 만에 허리 18cm 줄인 독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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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호 14면

리 웨스트우드는 5년 넘게 세계랭킹 1위 자리를 지켜온 타이거 우즈의 장기집권을 종식시켰다. 웨스트우드는 뛰어난 경기력뿐 아니라 성실한 태도로 자신만의 팬들을 보유하고 있다. 웨스트우드가 6일 상하이에서 열린 HSBC 챔피언스 대회에서 티샷하고 있다. [상하이 AP=연합뉴스]

혀를 내밀고 씩 웃을 땐 실없어 보이기도 했다. 유난히 통통한 볼에 운동선수답지 않게 턱살까지 있었고 표정이 지나치게 순박했기 때문이다. 그는 2000년 유럽 투어에서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고 세계랭킹 4위까지 올랐지만 카리스마는 없었다. 동글동글한 외모와 선한 인상 때문에 성공에 대한 에고(ego)가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황제 우즈를 끌어내린 랭킹 1위 리 웨스트우드

그런데 10년이 지나 그가 골프 세계랭킹 1위가 됐다. 주인공은 리 웨스트우드(37·잉글랜드)다. 10월의 마지막 날 웨스트우드는 5년여 동안 세계 랭킹 1위에 머물던 타이거 우즈(미국)를 끌어내리고 골프 최고봉에 올랐다. 그러나 웨스트우드는 일주일짜리 세계랭킹 1위가 될 수도 있다. 7일 끝나는 월드골프챔피언십 시리즈 HSBC 챔피언스는 세계랭킹 1~4위인 웨스트우드, 우즈, 마르틴 카이머(독일), 필 미켈슨(미국)이 모두 나왔고 그들 중 누구라도 우승하면 1위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골프 세계랭킹은 4대 메이저대회와 미국·유럽 등 6개 투어가 중심이 되어 운영하는 세계골프랭킹위원회(www.officialworldgolfranking.com)에서 산정한다.

올해 US 오픈에서 우승한 그레이엄 맥도웰(북아일랜드)은 “골프의 간판은 아주 잠깐 바뀌는 데 그칠 것”이라며 “우즈가 앞으로도 5년 동안 편하게 1위를 지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우즈가 HSBC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1위 탈환에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릴 수도 있다. 세계랭킹은 지난 2년간의 성적을 합산하는데 우즈는 지난 2년간 부상과 섹스 스캔들에 휘말려 대회 출전이 많지 않았고 성적도 그리 좋지 못했다. 물론 앞으로 우승을 밥 먹듯 한다면 사정은 다르지만 일단 과거의 랭킹 포인트는 우즈에게 불리하다.

그렇다면 웨스트우드가 의외로 장기 집권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그에게도 약점은 많다. 1위를 노리는 4룡 중 메이저 우승이 없는 선수는 웨스트우드뿐이다. 골프황제의 자격이 없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세계랭킹 1위 축하파티에서 샴페인을 퍼부으며 기뻐한 그의 눈빛은 과거의 물에 물 탄 듯한 눈빛과는 달랐다. 뱃살은 사라졌으며 얼굴에 턱선이 살아났다. 그의 바뀐 모습은 라이더컵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는 루크 도널드와 함께 미국의 우즈-스티브 스트리커 조를 6홀 차로 부숴 버렸다. 친한 친구 우즈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웨스트우드는 13세 때 골프를 시작했다. 할아버지에게 골프클럽을 선물받고 수학선생님인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처음엔 골프는 노인들의 게임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첫 버디를 잡은 이후 골프에 빠졌다. 그는 엄마에게 “세계에서 골프를 가장 잘 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13세 때 취미로 골프를 시작한 아이가 세계랭킹 1위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타이거 우즈는 요람에서부터 골프를 배웠고 필 미켈슨도 뒷마당에 그린이 있는 집에서 자랐다.
대신 웨스트우드는 운동신경이 좋았다. 골프를 하기 이전까지 럭비와 크리켓, 축구에 소질을 보였다. 2년 만에 지역 주니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만 20세인 1993년 프로로 전향해 96년 유러피언투어 대회에서 첫 우승을 했고 97년 호주 오픈에서 그레그 노먼을 연장에서 제압했다. 그는 라이더컵에서 닉 팔도와 좋은 파트너였다. 웨스트우드는 2000년 미국을 포함, 전 세계 모든 대륙에서 우승했다.

걸림돌도 있었다. 웨스트우드는 사람을 너무 좋아했다. 그는 성공했는 데도 친구들이 있는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그의 고향은 북잉글랜드 노팅엄 인근의 탄광촌이었던 워크솝이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은 성공을 위해 탄광촌인 고향을 떠났다. 웨스트우드와 함께 골프를 한 동료들도 상금이 많은 PGA 투어로 떠났다. 그러나 웨스트우드는 고향이 좋다며 시골에서 나오지 않았다. 유러피언 투어에 나가서는 대런 클락 등 주당들과 어울렸다. 2001년 첫아들이 태어난 기쁨에 한동안 운동을 푹 쉬었다. 세계랭킹은 한없이 떨어졌다. 다시 스윙을 하려고 했을 때 그는 너무 뚱뚱해져 있었다.

그는 2006년부터 몸 만들기 작업에 들어갔다. 좋아하던 과자·초콜릿을 끊었고 알코올도 확 줄였다. 역도선수처럼 체육관에서 살았다. 골프에 근육이 많으면 별로 좋지 않다는 속설이 있지만 과학적인 말은 아니다. 골프에 필요한 근육이 있어야 한다. 웨스트우드는 상하체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바벨과 씨름을 했다. 그는 100㎏이 넘는 무게로 벤치프레스를 한다.

지난 4년간 그가 줄인 허리 사이즈는 7인치(17.8㎝)다. 요즘 새로 나온 갤럭시탭 PC의 화면 길
이다. 그는 체지방을 50% 뺐고 그걸 근육으로 바꿨다. 그가 다시 골프의 메이저 무대에서 TV 카메라에 모습을 보인 것은 2008년 US 오픈이다. 우즈가 마지막 메이저 우승을 한 대회다. 무릎을 다쳐 다리를 절뚝거리는 우즈와 노장 로코 메디에이트의 뜨거운 91홀 연장 접전이 주 플롯이
었고 3위를 한 웨스트우드는 양념이었다.

지난해 디 오픈 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에서 웨스트우드는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도 스포트라이트는 그와 챔피언 조에서 경쟁한 60세의 톰 웟슨에게 집중됐다. 그는 선두로 나서기도 했지만 마지막에 무너지면서 우승을 스튜어트 싱크에게 넘겨줘야 했다.

이후에도 웨스트우드는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계속 메이저대회 우승권에 나타났다. 양용은이 타이거 우즈의 역전 불패 신화를 깨고 첫 아시아인 메이저 우승을 기록한 지난해 PGA 챔피언십에서도 그는 3위에 올랐다. 웨스트우드는 올해 마스터스에도 등장했다. 미켈슨에게 1타 앞선 선두로 경기를 시작한 그는 결국 2위로 경기를 끝냈다. 이때도 주인공은 섹스 스캔들에서 돌아온 우즈와 그를 누를 정의의 사자로 여겨졌던 미켈슨이었다.

좌절하지 않았다. 또 무너진 게 아니라 우승에 한 타 차이니 점점 다가가고 있다고 여겼다. 웨스트우드의 메이저 도전은 계속됐다. 지난여름 골프 성지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열린 오픈 챔피언십에서도 2위에 올랐다. 그는 부상으로 뛰지 못한 올해 PGA 챔피언십을 제외한 지난 10개 메이저대회에서 2위 2번, 3위 3번의 성적을 냈다. 그가 우즈처럼 강력한 끝내기 능력을 갖췄다면 ‘웨스트우드 슬램’ 같은 것을 했을지도 모른다.

웨스트우드는 현재의 4룡 중 가장 장타를 친다. 샷에 대한 자신감도 넘친다. 5일 열린 HSBC 챔피언스 2라운드, 호수투성이인 파 5, 18번 홀에서 2온을 시도한 선수는 4룡 중 웨스트우드뿐이었다. 성공했다. 그린 근처까지 볼을 보냈다. 그러나 약점도 있다. 웨스트우드는 쇼트게임이 가끔 말썽이다. 늦게 골프를 시작해 그렇다는 지적이 있다. 웨스트우드는 18번 홀 그린 근처에서 웨지로 뒤땅을 치는 바람에 버디를 잡지 못했다. 가끔 그런 실수를 한다. 그러나 예전처럼 씩 웃고 넘어가지 않는다. 그는 메이저대회에서의 좌절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내년 한두 개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겠다”고 했다. 그러면 세계랭킹 1위와 골프황제라는 이름은 따라 오게 돼 있다.

세계랭킹 3위 마르틴 카이머의 상승세도 무섭다. 25세의 카이머는 2006년까지 유럽 3부 투어에서 뛰던 선수다. 3부 투어 14경기에서 5승을 했고 모든 경기에서 톱 10에 들었다. 59타를 치기도 했다. 그해 8월 2부 투어로 올라가 8경기에서 2승을 하고 2007년 유러피언 투어에 올라와 신인왕을 탔다.

2008년 아부다비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두바이 데저트 클래식에서는 버디·버디·이글로 경기를 마무리, 1위를 한 우즈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2009년 프랑스 오픈에선 웨스트우드를 연장에서 꺾고 우승한 전과도 있다. 올해 3개 대회 연속 우승했는데 주요 골프대회에서 3연속 우승은 2006년 우즈 이후 처음이다. 그는 올해 PGA 챔피언십을 제패하면서 메이저 우승의 기쁨도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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