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내 스타를 위해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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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영만이 희망이요~!" 한승기(中)씨와 그의 밴드가 자신들이 만든 응원가 "꿈의 박주영"을 열창하고 있다. 권혁재 전문기자

"박주영의 청소년 대표 차출을 지지하는 입장을 조만간 홈페이지에서 밝히겠습니다."

'한국 축구의 희망'으로 떠오른 축구선수 박주영(20.FC서울). 그의 팬 200여 명을 이끄는 '박주영 팬클럽' 회장 한승기(42.가수)씨는 "이번 대회는 세계청소년대회(6월)를 앞둔 평가전 성격이 짙다"며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박 선수의 영국 프리미어 리그 진출 꿈도 가능해지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대한축구협회는 22일부터 열리는 4개국 초청대회를 앞두고 청소년대표로 박 선수를 뽑을 예정이다.

그러나 소속 팀은 프로리그 경기를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쉽게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 힘든 사안. 그러나 좋아하는 스타가 훌륭하게 성장하기만을 바라는 팬들의 주장은 거칠 것이 없다.

사실 박 선수가 단기간 내에 최고 스타가 되는 데는 이 클럽의 역할도 컸다. 이들은 올 초 팬클럽을 결성한 뒤 우선 홈페이지(www.2060.tv)를 통해 TV로 중계되지 않는 박 선수의 해외 경기를 교민 통신원까지 섭외, 문자로 중계해 왔다.

이 사이트의 하루 최고 접속자 수는 무려 20여만 명. 한 회장은 '꿈의 박주영'이라는 응원가를 만들기도 했다. 온라인에서 인기를 끈 이 노래는 노래방에도 곧 등장한다. 6월께 전국의 팬들을 한 곳에 모으는 행사도 준비 중이다. 박 선수의 홍보를 도맡아 하고 있는 셈이다.

스타가 팬을 몰고 다니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팬이 스타를 만들어 간다. 팬덤의 활약상, 그 모습들도 천태만상이다.

'불멸'까지 책임진다=지난달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 이은주(사진)씨. 요즘 그녀의 팬클럽은 생전보다 오히려 더 바쁘다. 세상에서 '이은주'라는 이름이 잊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몸은 떠났지만, '불멸'을 선물하고자 하는 팬이 많은 것이다. '이은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인터넷 카페(cafe.daum.net/eunjuchumo)를 개설한 염제인(38)씨도 그런 팬덤 중 한 명이다. 지난 11일 이 카페의 문을 연 염씨는 일주일도 안 돼 150여 명으로 불어난 회원과 함께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할 계획이다. 호스피스 병동을 다룬 영화 '하늘정원'에 출연하면서 호스피스 홍보대사를 지낸 이씨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다. 지난 13일에도 이씨가 잠든 청아공원에 갔었다는 염씨는 "예전에는 은주씨를 직접 본 적도 없는 소극적인 팬이었는데, 이제야 성실한 팬이 된 것 같다"며 쓰게 웃었다.

이미지 관리까지 우리가!=개그맨 출신 MC인 남희석씨의 팬클럽 '하회탈 남희석'. 이 클럽은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남몰래 외국인 노동자를 돕고 있기 때문이다. 회원들이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3년 초. 평소 이 문제에 관심이 많던 남씨가 서울 동대문에 있는 외국인노동자센터를 찾아 후원을 약속한 뒤 자신의 팬들에게도 동참을 호소했다고 한다. 좋아하는 스타의 부탁에 회원들은 흔쾌히 도움의 손길을 뻗쳤고, 이후 부상자 수술비 모금운동이나 친선축구대회 같은 행사를 열였다. 물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고생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돕겠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다. 그러나 팬들의 이런 활동은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는 똑똑한 연예인'이라는 남희석씨의 이미지를 굳혀줬다.

마음에 안 들면 바꿔서라도=지난해 11월 20일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에선 50여 명이 참석한 집회가 열렸다. 프로야구단 LG 트윈스를 비판하기 위한 집회. 그러나 알고 보면 이날 집회는 LG에 대한 사랑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참석자는 모두 LG의 '골수 팬'들이다. MBC 청룡 때부터 구단을 응원해 온 이들은 최근 LG가 독단적으로 팀을 운영한다고 판단, 고언(苦言)을 외친 것이다. 집회를 주도한 단체는 'LG 트윈스 바로잡기 운동본부'. 이들은 ▶김용수 코치의 복귀▶김재현 선수의 FA 계약서 원본 공개▶어윤태 사장 퇴진 등을 요구했다. LG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김 코치와 김 선수가 팀을 떠날 상황에 처하자 팬들이 일어선 것이었다. 물론 이들의 요구가 전격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그러나 어 사장은 바로 다음달 "팬 여러분께 분노를 일으키게 한 점을 사죄드린다"며 자진 사퇴했다.

남궁욱 기자<periodist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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