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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쑤, 좋을시고 춤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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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소고재비 이옥금(53). 전북 김제 출신의 그는 둑새풀을 베어 죽을 끓여대던 시골생활이 정말 지긋지긋했다. 나이 열한 살 식모살이 나갈 참에 옆동네에 진을 친 국악판을 보고 '옳다구나' 하고 따라붙었다. 그날로 야반도주를 감행한 것이다. 동료인 장구재비 박은선(49)은 또 달랐다. 보릿고개 시절 입 하나 더는 게 급했던 집안, 부모는 아리랑 농악단에 쌀 한 가마니를 받고 열다섯 살 난 딸을 넘겼다.

임진왜란 시절이 아니다. 1970년대까지 전국을 돌던 여성 국악패들 스토리다. 전성기 때는 20개를 헤아렸다던 국악패들은 '전통문화의 불가사리' TV가 보편화된 80년대 초 그야말로 풍비박산 났다. 멤버도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들은 오금이 저려와 TV 국악프로를 틀지 못했다. 꾹꾹 눌러온 흥과 신명이 되살아날까봐…. 그런 '어제의 꾼'들이 다시 뭉쳤던 무대가 지난해 10월의 서울 호암아트홀 공연 '춤추는 바람꽃 여성농악'. 요즘 말로 '걍' 죽여주는 무대였다.

20여년 만의 신명이요, 흥이다. 그게 어딜 가겠는가. 허술한 듯 꺾고 흔드는 육자배기 가락에도 '조미료'가 없어 신선했다. 지방의 '귀명창'들이 "에잉, 저게 소리란감?"하며 돌아선다는, 그러나 명성 높은 서울의 명창 A씨의 노랑목은 "저리 가라"였다. 진도씻김굿의 명인 김대례의 걸걸한 소리와도 꼭 닮았다. 하지만 최고의 무대는 따로 있었다. 춤, 그것도 남성 춤꾼 김운태(41). 10분 남짓 그의 소고춤은 황홀했다. 그토록 멋스러웠다.

눈앞의 상황을 믿기 어려워 입을 헤벌린 채 옆자리에 앉은 평론가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돌아온 그의 말이 이랬다. "본래 우리 춤은 남성춤이 으뜸이야. 김운태는 당대의 꾼이고. 지금 당신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나간 것 같다고? 그럼 제대로 본 거야. 축하해" 어쨌거나 "얼쑤!" "조오타!"를 외쳐대던 그날 객석의 추임새도 귀에 쟁쟁한데 기회는 또 왔다. 지난 8일 서울 강남 LG아트홀 '남무(男舞)-춤추는 처용아비들'….

놀라워라. 김운태는 그날 무대의 춤꾼 여덟 명 중 최연소에 불과했다. 올해 연세 여든여덟의 최고령인 문장원 선생은 '허튼 춤' 하나로 객석을 압도했다고 들었다. 얼마 전 유행어대로라면 "니들이 우리 춤 맛을 알아?"쯤이 될까. 어쨌거나 60, 70대 춤꾼들도 줄줄이 선보였던 그날 공연은 흥행에도 너끈히 성공했다는데, 불과 5개월 새 이 무슨 변화요, 조짐인가 싶다. 자, 때아닌 춤바람은 이유가 있다. 두 가지다.

우선 우리 춤 예찬-. 어디 길 막고 물어보라. 환갑이 지나서도 멋스럽게 출 수 있는 게 우리 춤 말고 또 있는지를. 그건 발레 같은 '인공 춤'이나, 영문 모를 현대무용과는 또 다른 멋일시 분명하다. 그러나 전통이면 어떻고, 현대라면 또 어떠하랴. 스포츠댄스도 좋고, 관광춤도 환영한다. 컴퓨터 앞에 죽치느라 몸의 기운이 그저 위로 올라와 너나없이 상기(上氣)된 요즘 사람에게 춤은 밸런스를 되찾아준다. 말하자면 방하착(放下着)의 보약이다.

또 하나는 요즘 아연 부는 춤바람 때문이다. '위 스타트 인 아트' 차원의 문화나눔 운동을 벌이는 메세나협의회도 4월부터 무용치료를 보강한다고 들었다. 무용치료란 캐나다 등 서구 사회가 공공복지 차원에서 지원하는 핵심 품목. 했더니 안산예술종합학교(옛 소년원) 역시 올해부터 전교생에게 무용치료를 시범 실시한다. 법무부.문화관광부의 공동 프로그램이다. 이런 변화 앞에 넣는 추임새 한 자락이 이 글이다. "얼쑤, 좋을시고!"

조우석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