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씨는 살아났는데…] 소비·투자로 번질지 지켜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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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추석 대목을 앞둔 서울의 한 백화점 매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던 것(上)과 달리 13일 같은 매장에 손님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신인섭 기자

지금부터 약 1년 전의 일이다.'4.15 총선'을 앞두고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앞 다퉈 경기 낙관론을 폈다. 민간연구소조차 성장률 전망치를 경쟁적으로 올렸다.

그러나 경기는 3분기부터 곤두박질했다. 정부와 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입법을 밀어붙이면서 개혁론이 경제를 뒷전으로 밀어냈고, 여기에 국제 유가와 원화 값 급등이란 악재가 덮쳤다. 올해는 어떨까. 일단 각종 소비지표엔 파란불이 들어왔다. 수출이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주가가 1000을 넘어섰다. 주택 거래도 회복 추세다. 심리 회복에 그쳤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백화점 매출액, 신용카드 소비액이 급증하는 등 실적도 좋아졌다.

그러나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아직은 소비, 그것도 고소득층 소비가 회복된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점차 나아지고 있는 중산층 이상의 소비심리가 실제 소비.생산 증가로 이어질지도 더 두고봐야 한다.

여기서 또다시 극심한 정치적.사회적 혼란이 생긴다면 경기는 언제든지 꺾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유가나 원화 값도 여전히 불안하다.

◆소비 회복 본격화됐나=연초 백화점.신용카드 매출과 자동차 내수 판매가 크게 늘어난 것은 고소득층이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반면 재래시장이나 상가에는 아직 찬바람이 불고 있다. 소비 회복이 서민층으로까지 확산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는 전국적으로도 비슷한 양상이다. 지방에서도 백화점 매출은 늘었지만 재래시장과 상가는 여전히 침체돼 있다.

이 같은 소비 양극화 때문에 소비 회복이 앞으로 더 확대될 것인지에 대한 견해도 엇갈린다. 낙관론 쪽에선 2002년 이후 소비를 억눌러온 가계 빚이 감당할 만한 수준으로 조정됐기 때문에 머지않아 소비 회복세가 서민층으로까지 확산될 것으로 본다. 가계대출이 지난해 3분기 확 줄었다가 4분기부터 늘어나고 있는 게 이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초 소비가 회복된 것은 지난해 말 삼성전자 등 대기업의 상여금이 한꺼번에 풀린 데다 혼수 특수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란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기업 투자와 건설경기는=본격적인 내수 회복이 이뤄지기 위해선 기업 투자와 건설경기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지표상으론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설비투자의 선행지표인 국내 기계 수주는 지난해 3분기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계속해 왔다. 기계는 만드는 데 시간이 필요해 기업이 원한다고 단기간에 댈 수가 없다. 따라서 올 상반기까지는 설비투자가 크게 늘 것으로 보기 어렵다. 건설경기도 비슷하다. 선행지표인 건설 수주가 2003년 4분기부터 지난해 하반기까지 줄곧 감소 추세였다.

통상 1분기 정도 늦게 나타나는 지표이긴 하지만 고용 지표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기업의 투자심리는 빠르게 호전되고 있다. 그동안 대기업은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설비투자를 하는 대신 가동률을 높여 왔다. 이게 한계에 다다르고 있어 투자심리 호전과 맞물리면 하반기 이후 설비투자가 살아날 공산이 크다.

◆아직은 변수 많아=지표상으론 경기 회복세가 지난해 초보다는 훨씬 강하고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데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그러나 아직 낙관하기엔 이르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우선 고소득층에서 시작된 소비 회복이 서민층으로 확산돼야 한다. 또 호전된 기업의 투자심리가 실제 투자로 이어져야 한다. 강력한 부동산 투기 억제정책과는 별도로 건설 경기를 살릴수 있는 종합투자계획이 집행돼야 한다. 국제 유가와 원화 값 급등도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따라서 정부 정책은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시장은 작은 충격이나 실수에도 쉽게 흔들리기 때문에 '경제 다걸기(올인)'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특별취재팀=정경민.김종윤.허귀식.김원배.김창규.김영훈 기자(이상 경제부), 이현상.박혜민.이철재 기자(이상 산업부), 서미숙 기자(중앙일보조인스랜드), 광주.대전=천창환.김방현 기자 <jkm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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