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연가 닮은 꼴 뽑힌 김명섭, 황은경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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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닮았다""글쎄,별로 안 닮았는데…"

한류열풍에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된 사람들이 있다. 지난 5일 강원도 용평리조트에서 열린'겨울연가 닮은 모델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김명섭(28).황은경(22)씨가 그 주인공. 50여명이 참가해 열띤 경합을 벌인 이 대회에서 이들은 각각 겨울연가의 주인공이었던 강준상(배용준 분).정유진(최지우 분)의 닮은 꼴 모델로 선발됐다. 언론을 통해 이들의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자 순식간에 네티즌들의 화제가 됐다. 이들은 앞으로 용평스키장과 계약을 맺고 일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각종 축제.이벤트 등에 참여할 예정이다. 한류 확산의 또다른 첨병으로 활약할 이들을 만나봤다.

"그저 재밌는 경험이 될 것 같아 참가했는데 이렇게 반응이 클지는 몰랐어요."

▶김명섭씨.

모든 게 예상과 달랐다. 노랗게 염색한 머리도, 사각뿔테 안경도, 배용준식으로 꼬아 맨 목도리도 없었다. 단지 자연스레 빗어 넘긴 바람머리와 갸름한 얼굴, 서글서글한 반달눈 어디 즈음에서 배용준의 그림자가 살짝 비쳤을 뿐이다.

김명섭(사진)씨는 대회를 마친 후 며칠 사이에 다시 머리카락을 검게 염색했다. 본인 말대로 일상에서는 "배용준도, 강준상도 아닌 김명섭"이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밀려드는 인터뷰와 방송출연 제의에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론 이만저만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닮은 모델로 뽑혔으니 그럴만도 하지만, 주변사람들에게 영원히'배용준 닮은 꼴'로 인식될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해요."

대회에 나가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기계체조를 전공한 만능 스포츠맨인 김씨는 지난 겨울 회사 동료들과 용평스키장을 자주 찾았다. 그러다 우연히 대회 소식을 알게 된 동료들이 한번 나가보라고 강하게 권유하자 김씨도 용기를 냈다. 대학시절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여고생들이 "배용준이다!"라고 소리 지르며 버스를 좇아올 정도로 배용준을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들어온 그다.

일단 대회 출전을 결정한 후로는 머리모양, 안경, 의상은 물론이고 인터넷 VOD로 드라마 겨울연가를 다시 보며 연기 연습에도 최선을 다했다. 춤과 기계체조를 섞은 개인기 역시 완벽하게 준비했다. 여자친구는 드라마에서 강준상이 새끼손가락에 반지를 끼었다며 소품으로 반지까지 챙겨줬다.

1등으로 뽑힌 비결을 묻자 김씨는 "강준상과 옆모습이 많이 비슷한 게 효과가 있었나보다"라고 말했다. 결선에 올라서는 "생각보다 무대에서 긴장하지 않은 덕분에 연기도 만족스럽게 한 편"이었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는 현재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에서 스포츠센터 수영강사로 일하고 있다. 평소에도 준수한 외모 탓에 인기 강사로 통했으나 대회 후에는 싸인을 부탁하는 수강생까지 생겼다."혹시 그만두는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정작 김씨는 그럴 생각이 없다. 연예계로 진출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지만 "괜히 바람만 들까 걱정이 앞선다"며 조심스럽다. 사실 그의 꿈은 따로 있다. 올해 안에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임용고시를 준비해서 체육지도자의 길을 밟는 것이다. 강준상과 닮은꼴로 뽑혔다고 해서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는 생각에서다. 지금은 그저 수상 턱을 내느라 상금 300만원을 다 써버릴 것 같다는 걱정을 하면서도 네티즌과 언론의 관심이 신기할 뿐이다.

박수련 기자

"일부 네티즌들의'악플'에 잠깐 속상하기도 이젠 괜찮아요."

▶황은경씨.

갑작스런 유명세를 치렀지만 황은경(22)씨는 의외로 차분했다. "옆모습이 최지우와 똑같다"는 말에 "앞모습은 오히려 별로 닮지 않아 사진기자들이 옆모습을 주로 찍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눈 아래 부분, 특히 입이 닮았다는 얘길 많이 들어요. 고 3때 엄마 손에 이끌려 쌍꺼풀 수술을 하고나서 전체적인 이미지가 비슷해진 것 같아요." 자신의 외모에 대해 밝히기 싫은 부분까지 스스럼없이 말하는 모습이 또래보다 성숙해 보였다.

사람의 인상을 좌우하는 것 중에 머리 모양을 빼놓을 수 없다. 이때문에 어깨까지 오던 치렁치렁한 머리를 대회 직전에 잘랐다.

그는 "매일 아침 머리를 만져야 돼서 조금 불편하지만 어차피 머리는 기르면 되는 거니까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잘랐다"고 말했다.

중 2때부터 최지우 닮았다는 말을 듣기 시작한 그는 사실 처음에는 그 말이 달갑지 않았다고 한다.

"누군가 나를 두고 닮았다고 말하면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타이어에 10번 깔렸냐?'라고 웃으며 자지러지는 분위기가 싫었어요. 요즘 닮았다는 말을 들을 땐 그 분들이 예쁘게 봐 주시는 거라 생각하고 고마워해요."

"닮아서 생긴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다"는 말에 "남자들이 쫓아온다거나 하는 흔한 경험 한 번 없었다. 딱 한 번, 친구들과 술집 갔다 나올 때 종업원이 '최지우씨 아니세요?'라며 따라 나온 적 있다"며 웃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다 매스컴을 통해 갑자기 유명해지면 바뀌는 것들이 있을 만하다. 우쭐한 기분에 목소리가 커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신문에서 내 얼굴 보고 나도 놀랐다. 괜히 혼자 민망해 머리 숙이고 다니고, 사람들 눈 의식하고…. 언니도 놀라 전화했고, 엄마는 신문 다 사서 스크랩 해뒀다. 그 외에 달라진 건 없다. 굳이 하나를 꼽자면 생각이 많아진 것 같다. 용평리조트와 모델 계약을 했고, 일본어 공부도 해야 되고…. 내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것 같다."

어쭙잖은 자긍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자신을 진지하게 돌이켜 보고 계획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처럼 세인의 관심을 끄는 것에 대해선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도, 관심을 끄는 것도 잠시다. 나는 스타가 아니다. 만약 어떤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해 볼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그 문을 적극적으로 열 생각은 없다"고 힘줘 말했다.

인터넷에 사진이 나가고 나서 몇몇 네티즌들의 심술궂은 답글에 속상했을 만도 하다. 처음 봤을 땐 잠깐 속이 상했지만 곧 괜찮아졌다고 한다. 그는 "친한 언니가 '정말 닮았다'며 홈페이지에 가서 확인해보라고 댓글에 홈페이지 주소를 썼는데 불과 1분사이에 100명이 넘는 네티즌이 다녀갔다"며 신기해했다.

"대회 상금을 어디에 쓸 계획인가"라고 묻자 "절반가량은 엄마한테 드리기로 약속했고, 대회 준비하면서 같이 고생한 친구들 옷 한 벌씩 사 줘야 되고, 본선에 올라갔던 사람들 보드대여요금도 내기로 했고, 회사 식구들 밥도 사줘야 되고, 남자친구한테도 선물해야 되고…. 아휴, 얼마 남지도 않겠네요"라고 웃으며 답한다. 인기 연예인의'닮은 꼴'이 아닌 평범하지만 건강한 '22살 황은경'의 개성이 물씬 느껴졌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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