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여놓은 수사만 10건인데 … “앞으로 더 터질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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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김준규 검찰총장이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동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공안부장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최근 동시다발로 진행되는 검찰 수사에 정치권과 기업·금융계가 긴장하고 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C&그룹 수사를 계기로 서울과 지방의 각 검찰청에서 기업과 정치인 등에 대한 압수수색과 소환 조사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 출범 초기를 방불케 하는 이번 ‘정·재계 수사’의 배경은 무엇일까. 정치권에서는 청와대와 검찰의 사전 교감설이 나오고 있다. 임기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권력 누수를 막기 위해 청와대가 ‘공정사회’ 카드를 꺼내들었고, 검찰에서 전방위 수사로 호응하고 있다는 시나리오다.

 이에 대해 검찰은 “주요 사건 대부분이 자체 내사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정치적 배경은 전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북부지검에서 수사 중인 청원경찰친목협의회 ‘입법 로비’ 의혹의 경우 지난 5~6개월간 내사와 자금 추적을 벌이다 공개 수사로 전환한 것이란 얘기다. 한 검찰 관계자는 “청와대에선 오히려 ‘곧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데 검찰 수사에만 관심이 쏠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정·재계 수사가 특정 시점에 몰린 이유에 대해 검찰 인사들은 지난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대형 사건 수사의 타이밍을 잡지 못해 왔다는 점을 꼽고 있다. 올 들어 ‘검사 스폰서’ 의혹의 후유증 속에 각 검찰청이 숨죽이며 진행해온 내사가 최근 성과를 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검찰청 간 수사 경쟁이 가열되면서 앞으로도 굵직굵직한 수사가 뒤를 이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 대검 관계자는 “서울서부지검의 한화·태광그룹 수사로 특수수사가 각광받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는 상황”이라며 “제2, 제3의 수사가 더 터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김준규 검찰총장은 지난달 29일 대검 간부 회의에서 “범죄 혐의를 잡으면 수사하는 건 당연하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압 수사 시비나 정치적 형평성 논란 등이 생길 가능성을 경계한 것으로 풀이된다.

 ◆성과 없는 한화·태광 수사=수사 경쟁의 방아쇠를 당긴 서울서부지검의 한화·태광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는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본사 압수수색 이후 한화 수사는 45일, 태광 수사는 18일이 지났지만 비자금 조성이나 로비와 관련된 뚜렷한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서부지검 봉욱 차장검사는 이날 “(비자금 수사는) 캄캄한 방 속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다. 수사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진술 위주에서 증거 위주로 수사 패러다임이 변하면서 수사기간이 길어지는 추세인 데다 비자금이 문어발식으로 퍼져 있어 영장 등 법이 정한 절차를 밟아 확인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수사 기간이 길어지면서 김준규 총장이 강조해온 ‘환부만 도려내는 정교한 수사’에 역행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한화 그룹의 경우 계열사뿐 아니라 태경화섬 등 협력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줄을 잇고 있다. 그룹 주요 임직원들도 연일 검찰에 불려나와 조사를 받고 있다. 수사 대상이 된 한 관계자는 “내년도 계획 수립 등 회사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선욱·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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