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국제도시 랜드마크 빌딩이 흉물로 5개월 …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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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찾은 인천 송도경제자유구역의 동북아 트레이드타워(NEATT)는 건물 전체가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총 68층 높이의 이 건물은 잿빛 얼룩으로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송도의 랜드마크로 기대를 받았던 이 건물이 도심의 흉물로 전락할 뻔했다. 지난 5월 공정률 73% 상태에서 공사가 전면 중단됐던 것이다. 시공사인 대우건설은 공사비 850억원을 시행사인 송도국제도시개발유한회사(NSIC)로부터 받지 못했다며 유치권을 행사했다. 유치권은 채권자가 돈을 전부 받을 때까지 건물이나 유가증권을 계속 점유할 수 있는 권리다. 결국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중재에 나서면서 최근에야 공사가 재개됐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면서 부동산 유치권 분쟁이 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1심 기준으로 2005년 142건이던 유치권 관련 소송 접수건수가 지난해 587건으로 늘었다. 올 9월 말 현재 519건이 접수됐다. 이 때문에 도심에 흉물로 방치된 건물이 늘고 있다.

 부산에선 아파트에 대한 유치권 행사를 놓고 몸싸움까지 일어났다. 지난 7월 부산 광안동의 신축 아파트 현장에서 아파트 내부로 진입하던 한모(57)씨 등이 이를 막는 김모(50)씨 등과 충돌했다. 당시 한씨 측은 공사대금 7억9000여만원을 받지 못해 유치권을 행사 중이었다. 그러자 부도처리된 아파트를 경매에서 21억여원에 낙찰받은 김씨 측이 막아선 것이었다.

부동산 유치권 분쟁은 파악하기 어렵다. 유치권이 부동산 등기부에 기재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행사와 시공사 간 계약관계도 알기 쉽지 않다. 허위 유치권 행사가 생기는 이유다. 법무법인 신아의 김형남 변호사는 “가짜로 유치권 신고를 하거나 금액을 높여 신고해 경매신청 채권자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상명대 김기찬(글로벌부동산학과) 겸임교수는 “시행사가 도망가거나 신경을 쓸 겨를이 없는 경우 시공사의 허위 유치권 행사를 막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허위 유치권 전문 브로커까지 등장했다. 지난 7월 서울북부지검 형사1부는 경매 부동산에 거액의 허위 유치권을 신고하는 방법으로 헐값에 낙찰받으려 한 혐의(경매방해)로 브로커 배모(53)씨 등 8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배씨는 지난해 9월 법원 경매에 나온 아파트 1채에 대해 1억6000만원어치의 가짜 인테리어 공사 계약서·견적서를 작성했다. 이를 근거로 유치권을 신고해 경매를 두 차례 유찰시킨 혐의였다. 배씨는 부동산 원소유자 등으로부터 이 아파트의 경매가를 낮춰 싼값에 낙찰받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유치권(留置權)=물건·유가증권에 관한 채권 전부를 받을 때까지 해당 물건·유가증권을 유치할 수 있는 권리. 예컨대 수선공이 시계 수리를 의뢰받은 경우 시계 주인이 수리비를 낼 때까지는 시계를 돌려주지 않고 그대로 갖고 있을 수 있다. 채무자의 변제를 심리적으로 강제할 수 있다.  
이철재 기자, 송도=심새롬 기자


법무부, 권리 애매한 부동산 유치권 폐지 추진

권리 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법적 분쟁을 양산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부동산 유치권이 폐지될 전망이다. 31일 법무부에 따르면 법무부 산하 민법개정위원회(위원장 서민 충남대 명예교수)는 최근 회의를 열어 유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에서 부동산을 원칙적으로 제외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다만 미등기 부동산에 대해선 저당권을 설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유치권을 인정해 주기로 했다.

 위원회는 부동산 유치권을 폐지하는 대신 공사업체 등 비용을 지출한 쪽에서 저당권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건물 시공업체가 시행사에 공사 대금을 떼인 경우 해당 건물에 대한 저당권을 설정한 뒤 경매를 통해 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위원회는 그동안 ▶유치권 행사 때문에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치되는 건물이 늘어나고 ▶유치권 규정이 모호해 피해가 많이 발생한다는 지적에 따라 유치권 개정을 논의해 왔다. 서울대 김재형(법학) 교수는 “등기제도가 있는데도 유치권을 인정하는 것은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개정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법무부는 유치권 폐지를 담은 민법 개정안을 마련한 뒤 내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건설업계는 불안해하고 있다. 소규모 건설사를 운영하는 박모씨는 “하청 전문 회사는 부동산 유치권이 안전판 역할을 했다”며 “법원이 저당권 설정 청구권 소송을 신속히 처리하는 등 실무적 절차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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