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벤치마킹 대상 된 출범 10돌 휴비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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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너나 없이 매달 50억~60억원씩 적자가 났다. 일부 업체는 부도를 내고 고꾸라졌다. 1990년대 후반 화섬업계의 모습이다. 과잉 투자의 후유증이었다. SK케미칼과 삼양사 등 화섬 4사가 머리를 맞댄 것은 이즈음이다.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사업 합병을 통한 생존을 모색한 것이다. 줄다리기 협상 끝에 삼양사와 SK케미칼의 화섬 부문이 지분 50대 50으로 ‘한 배’를 타기로 했다. 그 뒤 10년이 흘렀다.

 2000년 11월 돛을 올린 ㈜휴비스가 1일로 출범 10주년을 맞는다. 이 회사는 올해 매출 1조4000억원, 영업이익 500억원을 내다본다. 국내 1위, 세계 3위다. 애물단지의 화려한 변신인 셈이다. 한편으로 휴비스는 공동 경영의 성공 사례로 주목받는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두 기업이 ‘부부’로 만났는데 큰소리 한번 나오지 않아서다.

 ◆“차근차근 걸어왔을 뿐”=2008년 말 A사 대표가 서울 삼성동에 있는 휴비스 본사를 방문했다. 역시 50대 50 합작으로 탄생한 A사는 극심한 내부 갈등을 앓고 있던 터라 휴비스에서 노하우를 배워보자는 심산이었다. 문성환 휴비스 사장은 “회사마다 사정이 달라 정답은 없다. 우리는 차근차근 걸어왔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휴비스는 출범 때 잡음이 거의 없었다. 고용을 100% 승계했고, 급여와 복리후생 등 근무 조건을 각사의 ‘상위 레벨’에 맞췄기 때문이다. 그러는 한편 생산·구매·영업 등에서 중복 요소를 걷어냈다. 이후 자연스럽게 ‘화학적 융합’을 시도했다. 처음엔 두 회사 출신이 사장과 부사장을 번갈아 맡기로 했지만 2006년 부사장 직제를 없앴다. 운영상 효율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 윤필만 인력개발실장은 “초기엔 ‘SK-SY(삼양사)-SK 출신’을 배치하는 ‘지그재그’ 조직이었지만 지금은 무조건 능력 순”이라며 “나부터 팀장급 30여 명의 ‘본적(출신 회사)’을 따지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은 “두 회사의 공동 경영은 경영학 교과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라고 자평했다. 김윤 삼양사 회장은 “(휴비스 탄생은) 기업을 경영하면서 가장 힘든 의사결정이었다”며 “시너지를 내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잔치는 없다, 다시 긴장해야=빼어난 성과를 냈지만 이 회사는 1일 별도의 기념식을 하지 않는다. 문 사장이 임직원 250여 명과 지난달 15일 충북 단양에 있는 소백산을 오른 게 전부였다. 오히려 그는 회사의 상태를 “중환자실에 있던 환자가 이제야 퇴원한 것”이라고 비유하며 ‘긴장 경영’을 주문했다.

 문 사장은 최근 임원들에게 “올해 실적 호전에는 원화가치 하락, 원자재 값 안정 같은 ‘뒷바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사꾼의 실력은 풍년이 아니라 흉년 때 드러난다”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3연승을 하고도 여유를 부리지 않았던 김성근 SK 감독을 롤 모델로 삼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요즘 휴비스의 화두는 고부가 제품 개발이다. 이 회사는 올해 ‘메타아라미드’ 생산을 시작했다.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다. 메타아라미드는 400도 이상 고온에서도 녹지 않는 불연 섬유로, 일반 폴리에스테르보다 값이 10~20배 비싸다. 접착용 섬유 ‘로멜팅 파이버’, 옥수수를 주원료로 한 ‘인지오’ 등 친환경 소재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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