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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년 황우석 교수, 줄기세포 추출] 下. 세계는 줄기세포 전쟁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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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강연에는 두 마리의 개 사진이 종종 등장한다. 모두 허리신경을 잘라낸 척수장애 개들이다. 이 실험용 개 중 한 마리는 그대로 두고, 다른 한 마리엔 줄기세포로 만든 신경세포를 집어넣었다. 황 교수는 "신경세포를 넣어 준 개는 척수신경이 이어져 사람이 쫓아다녀도 잡지 못할 정도로 거의 정상이 됐다"고 소개했다. 척수 장애인들은 황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세계적으로 그런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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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 보면 우리나라의 줄기세포 연구 수준은 세계 최정상인 것처럼 보인다. 지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황우석 교수팀의 발표는 이런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1년여 동안 각 대학과 벤처의 환자 대상 임상연구 보고도 줄줄이 이어졌다.

과연 우리나라의 줄기세포 연구수준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을까. 본지가 줄기세포 연구자(51명)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41%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선진국에 못 미치지만 따라잡을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도 57%에 달했다. 해볼 만한 연구분야라는 것이다.

과학기술부는 우리의 기술이 선진국의 60~70%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제대혈이나 골수에서 줄기세포를 찾아내는 기술은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원하는 장기로 세포를 키우는 기술은 60% 수준에 불과하다. 또 인간 배아줄기 세포를 만드는 기술은 선진국 수준이다. 황 교수팀이 세계 처음으로 복제된 인간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뽑아낸 것은 당연히 독보적이다. 그러나 이 역시 필요한 장기의 세포로 키우는 기술은 아직 미국에 비해 50% 정도다. 30~40%의 기술격차만 극복하면 선진국과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다는 얘긴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기술격차를 극복하기 위한 핵심기술을 선진국들이 거머쥐고 있기 때문이다. 한양대 의대 해부세포생물학교실 윤현수 교수는 "줄기세포 연구는 생명공학기술의 종합작품"이라며 "주변 과학기술이나 기초학문이 약한 우리나라는 연구단계가 올라갈수록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나라는 연구비 투자나 연구인력 등 모든 면에서 선진국에 비해 크게 열악하다. 가톨릭대 의대 세포치료센터의 오일환 교수는 성체 줄기세포 분야의 연구 능력을 인정받아 보건복지부에서 연 15억원을 지원받고 있다. 이 돈을 20명의 교수가 쪼개 쓴다.

반면 연구인력 규모가 비슷한 미국 미네소타 대학은 연 1000만 달러(약 100억원)를 줄기세포 연구에 쏟아붓는다. 이는 미국 국립보건원이 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책정한 2억5000만 달러(약 2500억원, 2002년 기준)의 일부다.

미국 하버드대 역시 1억 달러(약 1000억원)의 자체 기금으로 줄기세포연구소를 세웠다. 캘리포니아주는 주 단독으로 10년간 30억 달러(약 3조원)를 줄기세포 연구에 지원하기로 했다. 호주도 5500만 달러를 투자해 국립 줄기세포연구센터를 설립했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부가 21세기 프런티어연구사업으로 지원하는 100억원이 전체 국가 연구비의 근간을 이룬다. 보건복지부 등에서도 연구비를 지원하지만 규모가 미미하다.

인력 면에서도 취약한 것은 마찬가지다. 본지 조사에서 국내 줄기세포 연구기관 중 석.박사급 연구자가 5명 이내인 연구소가 43%에 이른다.

하지만 이러한 외국의 물량 공세에도 우리의 강점을 살리면 기술을 선점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바로 연구자의 성실성이다. 줄기세포 연구는 엄청난 노동력과 집중력이 투입돼야 성공할 수 있는 독특한 분야라는 것이다. 황 교수는 "24시간 살아 있는 세포를 다뤄야 하는 바이오 분야는 연구자의 근면성이 연구결과를 좌우한다 "며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실험에 매달리는 우리 연구진이 정상 출퇴근하는 외국보다 앞설 것이 분명하다"고 장담했다.

전문가들은 임상을 줄기세포 연구의 종착역으로 가정하면 현재 세계 각국은 출발선에 서 있는 것으로 본다. 선진국이 원천기술이 있다지만 효율과 효능을 높이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오일환 교수는 "총성 없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연구비와 인프라도 필요하지만 인적 자원이 더 중요하다"며 "비정규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에게 사기와 비전을 주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특별취재팀

고종관.김정수 기자, 황세희(의학).박방주(과학).박태균(식품의약)전문기자,

김동우.정윤아 대학생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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