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지갑 슬슬 열릴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국내 소비 회복의 최대 걸림돌이던 가계 부채가 상당폭 해소돼 올 하반기에는 소비가 살아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가계 부채가 줄면서 세금.국민연금.건강보험 등을 뺀 가처분 소득의 증가로 소비 여력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4분기부터 신용판매와 승용차 내수 판매 등 가계의 소비동향을 반영하는 각종 내수 지표도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

9일 하나경제연구소가 내놓은 '최근 소비시장 동향과 향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가계의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지난해 4분기 67.5%로 2002년 2분기(67%) 이후 2년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2002년 3분기~2003년 3분기까지 70.5~71.8%에 달했으나 2003년 4분기부터 낮아져 지난해에는 67.5~68%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가계 부채 문제가 발생한 2002년 이전보다 낮은 시장금리도 가계 부채의 부담을 크게 덜어주고 있다.

이처럼 가계 부채 조정이 일단락되고 있어 최근 소비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하나경제연구소는 분석했다.

연구소는 ▶지난해 4분기 신용카드 결제액이 2002년 4분기 이후 2년 만에 증가(5.2%)한 것▶승용차 내수 판매가 지난해 11월 이후 계속 증가세를 보이는 것▶1월 넷째 주 수도권의 아파트 매매가격이 오른 점 등을 소비 회복세의 근거로 들었다.

또 최근 주가가 1000을 넘고 부동산 가격이 상승세를 보임에 따라 소비자들이 미래의 소득 증가를 기대해 미리 지갑을 여는 '부(富)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연구소는 전망했다.

최근 통계청이 조사한 1월 소비자기대지수가 지난해 6월 이후 7개월 만에 90선을 넘은 것도 이 같은 심리적 효과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연구소는 "이런 요인들을 감안하면 내수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다가 다시 침체국면에 빠지는 '더블 딥'의 가능성은 작다"고 밝혔다.

국내외 증권사들도 소비 회복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굿모닝신한증권은 지난해 말 삼성 등 16개 기업의 특별보너스 지급이 상반기 중 소비증가율을 0.2% 높이는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했다. 이들 기업의 특별보너스 총액은 1조1200억원에 달했으며, 이로 인해 민간소비가 7000억원 정도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스위스계 UBS증권은 소비 회복 추세를 인정하면서도 그 속도는 완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UBS증권은 지난해 가계 부채(2004년 말 기준 474조원) 증가율이 6%대로 안정세를 보이고, 지난해 4분기 판매신용이 2년 만에 처음으로 증가세를 보인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UBS증권은 그러나 고용시장 회복 전망이 밝지 않아 소비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V자'형의 경기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좀 더 시간을 두고 회복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