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를 만들지 않고 단지 드러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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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김종영의 1978년 작 "작품 78-20".

조각가 우성(又誠) 김종영(1915~82)이 살아있을 때 누가 물었다. "최근에 가장 감격스러웠던 일은 무엇입니까."그의 대답은 "되도록 감격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였다. "예술의 목표는 통찰"이라고 했던 그다운 답이었다.

한국 추상조각의 뿌리 구실을 했다고 평가받는 김종영은 그 개척자 구실에 비해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작가다. 5월 15일까지 서울 덕수궁미술관(관장 정준모)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현대조각의 선구자 김종영'은 과묵했던 그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회고전이다. 1930년대 인물상부터 80년대 추상조각까지 조각 70 여점과 드로잉 90 여점이 시대와 주제에 따라 4개 전시장에서 선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작품을 보관해온 작가 유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종영이 가장 따르고자 했던 눈은 심안(心眼)이었다. 인간적인 눈이다. 그는 심안으로 바라본 자연을 좇아 나무와 돌을 깎고 쪼았다. 작가의 개성이나 독창성보다는 자연이나 사물의 질서에 대한 관찰과 이해에 몰두했다. 그는 무엇을 만드느냐보다는 어떻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작품이란 미를 창작한 것이라기보다 미에 근접할 수 있는 조건과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그의 생각이 작품에 그대로 자취를 남기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선 이가 만나는 건 정신적 과정을 치열하게 통과한 한 작가의 고독하고 고고한 육성이다. 고즈넉한 공간에 늘어선 작품 하나하나가 절실하면서도 절제된 몸짓을 하고 자연처럼 그저 있다. 조각 스스로가 말하도록 이끈 조각가는 거기 없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우성의 풍경 드로잉 55점을 모은 '다경다감(多景多感)'전이 5월 15일까지, 서울 청담동 갤러리 원에서 '김종영 정물 드로잉'전이 3월 27일까지 함께 열린다. 작가의 예술론과 소묘 80 여점을 담은 책 '초월과 창조를 향하여'(열화당)도 나왔다. 02-2022-0640.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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