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씨의 성공 스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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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다른 성공 이야기 뒤에는 숨은 사연도 있게 마련이다. 김수영(30사진)씨의 사례도 그렇다. 실업계고 출신 최초 골든벨 소녀라는 타이틀에 이어, 글로벌 전문가라는 화려한 호칭을 얻기까지 그가 달려온 길은 조금 특별하다.

멘토가 없어도 기죽지 마세요

 “단 한 명의 멘토도 없었어요. 모두가 내 꿈을 틀렸다고 말했거든요.” 고1 때를 되돌아 보면 아직도 묵직한 답답함이 가슴을 누른다. 가출과 자퇴로 얼룩진 중학교 생활을 마감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입학한 실업계고에서 그는 처음으로 꿈이 생겼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조심스레 꿈을 말하는 순간 문제가 생겼다. 모두가 달려들어 꿈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담임교사는 학교가 문을 연 이래로 4년제대학을 간 사람이 한명도 없다고 못을 박았다. 부모님은 어서 고교를 졸업하고 경리가 되길 원했다. “독서실 아저씨까지 ‘네가 대학을 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했어요. 교실에선 왕따를 당했고요.”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고2로 올라오면서 오전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무작정 공부하기 시작했다”며 “꼬박 1년만에 고3 첫 모의고사에서 120점을 끌어올렸다”고 회상했다. 취업을 앞둔 실업계 고3 교실 분위기는 산만했다. 머리위로 실내화가 날아다니는 환경에서도 매일 12시간 이상 공부하는 손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해 마침내 연세대학교에 합격해 서울로 상경했다.

혀는 굳지 않아요. 편견일 뿐이에요

 김씨의 영어실력은 수준급이다. 외국인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것은 물론 발음도 원어민 못지 않게 뛰어나다. 본격적인 영어공부는 대학에 입학하고부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연습해야 발음이 좋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나이들어 영어배우면 혀가 굳는다’는 속설을 믿지 않아요. 20살 이후에도 매일 꾸준히 연습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원어민에 뒤지지 않는 발음을 구사할 수 있어요.” 자신감을 갖고 외국인의 발음과 똑같이 해보려고 노력한다면 시간이 흐른 뒤 자연스레 결과가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영자신문을 읽을 것도 추천했다. “매일 영자신문을 읽어가다보면 머릿속에 영문 구조의 틀이 자기도 모르게 잡히고, 자꾸 눈에 밟히는 중요한 단어들이 저절로 눈에 들어와요. 그걸 꼼꼼하게 외워보세요.” 이러한 영어실력을 토대로 그는 골드먼삭스 한국지사에 취업한 데 이어, 다국적 기업인 로열더치셸의 영국 본사에도 당당히 입사하는 성과를 거뒀다.

나만의 환상적인 꿈을 적으세요

 세계로 넓힌 꿈 목록은 지금의 김씨를 만든 원동력이다. 25살, 사회로의 첫 발을 내딛기 직전 받은 암선고는 그의 가치관을 변화시켰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삶이 끝날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종이에 무작정 적어내려갔다. 73가지 목록이 생겼다. 그는 “삶을 세 부분으로 나눠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살겠다는 목표도 이때 세운 것”이라며 “암이라는 큰 위기가 내 삶에 또다른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암은 완치됐고 그는 지금 종이에 적었던대로 한국이 아닌 영국에서 새로운 삶의 장을 펼치고 있다.

 73개 중에서 30여 개의 목표도 벌써 이뤘다. “마음이 부풀어오를 정도로 큰 꿈을적어보세요. 그리고 노력하세요. 반드시 이뤄질거에요.”

<이지은 기자 ichthys@joongang.co.kr 사진="황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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